여성의 창 스테이시 김/노인복지센터 근무
2023-09-14 (목)
참으로 이상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보통은 설레고 새로운 것을 마주하게 될 궁금증 혹은 기대로 들뜨는 게 당연한데 이번 여행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마음을 열고 나를 편하게 할 여행이 될 수 있기를 바랬건만 막상 출발하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와중에 조바심과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여행의 플랜과 일정을 내가 아닌 딸 아이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다행이었을 터이다. 암튼 온 가족 5명에 막내아들의 여자친구까지 합세한 하와이로의 여행이 지난 주말에 있었다.
도착하면서 시작된 일정은 꼼꼼하고 촘촘했다. 렌트카를 하자마자 곧바로 비치beach로 나갔다. 아쿠아블루aqua blue 바다 빛깔이 보석처럼 아름다운 빅아일랜드. 화산 용암과 바다, 정글같이 진한 초록의 숲이 우거진 조화는 다른 세계로의 초대였고, 아롱다롱 색색의 물고기들과 거북이가 연출하는 바닷속 광경은 신비한 자연에의 감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내가 안타깝게도 그 바다에 고작 발만 담그는 것에 그쳤다는 것.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저 짧은 “아, 예쁘네” 라는 문장 하나로 그쳤다는 것. 사진을 찍는 순간 올라간 입꼬리는 지속되지 않았고, 일상에서 벗어난 변화에 심드렁하고 무덤덤. 볼거리 먹거리를 챙기는 딸에게 “아이고 수고 많이 했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사람사는게 다 그렇고 그런거지 뭐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는 듯한 생각. 왜 그럴까. 예전의 나는 너무 많이 웃어서 아직도 청춘이냐고 핀잔을 듣고, 뭘 먹어도 맛있다고 해서 친구들은 내 기준을 폄하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로 공부하는걸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것들이 뇌를 자극해서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는 빈도가 낮아진 걸까 아니면 감성적으로 지쳐버린 수면상태인걸까.
변화는 또 있다. 난 친구들이 요즘 유행하는 반려동물 즉 개나 고양이등을 키우는 것에 질색하던 사람이었는데, 코로나 시기에 딸 아이가 고양이 한마리를 들여 키우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한 내 반응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뀐것이다. ‘공주’라는 이름의 딸의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닌 수시로 찾아보고 챙기고 밥을 주거나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는 나의 고양이로 변화되었다. 흰색 털이 집안에 흩날려도 괜찮고, 제때 끙아를 하지 않으면 염려가 되어서 수시로 리터박스를 살피고, 밖으로 나갈때면 혼자 있는게 안쓰러워 백팩에 들여서 등에 업고 나가는 식이다.
테크놀로지의 급변으로 삶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진 세상에서 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던데. 내 자신을 지켜갈 지혜가 요즘 정말 절실하게 필요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