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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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2023-09-08 (금)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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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다.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미셸 자우너가 H마트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고 추억한다.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그가 엄마의 조각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 바로 한국마켓인 것이다.

H마트에서 엄마를 떠올리는 그녀가 써 내려간 엄마는 우리가 주위에서 자주 볼 법한 정 많고 때로는 엄격한 한국인 이민자 엄마였다. 얼굴을 찌푸리면 주름이 생긴다고 이마를 문지르며 꾸중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다니면 허리 펴라며 견갑골 사이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곤 했다는 그녀는 나로 하여금 우리 엄마뿐 아니라 많은 주위 엄마들을 떠올리게 했다.

H마트에 가서 그녀가 먹고 자란 음식의 재료들을 사고 엄마가 애매모호하게 알려준 레시피로 엄마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작가는 그렇게 일찍 떠난 엄마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고 추억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엄마를 잃으면 무엇으로 엄마를 추억하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나도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엄마가 별 재료 없이도 뚝딱 말아주던 김밥에서 진하게 우린 육수에 갖은 고명을 얹어 후루룩 말아준 국수에서 하루 종일 불 앞에서 기름을 걷어 내며 푹 고아 내어 주던 뜨끈한 곰탕에서 나는 엄마를 만나겠지.

내가 살림을 하며 느끼지만 한국 음식은 손이 참 많이 간다. 웬만한 정성으로는 하기 힘든 음식이다. 이 음식을 삼시세끼 해주던 엄마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고 또 할머니의 레시피로 지은 밥을 먹는 내 딸들이 있다.

어느 집에 갔더니 딸기를 꼭지를 따지 않고 내어 주는데 나는 항상 엄마가 꼭지를 다 제거한 딸기를 내어 주었던 사실을 새삼 알아차렸다. 우리 엄마는 애 다섯을 키우면서도 딸기 꼭지를 일일이 다 따서 내주셨었구나. 귀찮은 일이지만 자식들이 먹기 좋게 딸기 꼭지를 다 따던 엄마의 손길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은 거창한 음식뿐만 아니라 고작 이 딸기에도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오늘 장을 보러 갔다가 딸기가 싱싱해 보여서 한 봉지를 사 왔다. 딸기 하면 사족을 못 쓰는 두 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딸기를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에 헹구어 깨끗이 씻는다. 꼭지를 하나하나 칼로 도려 내어 컨테이너 아래 키친 타월을 한 장 깔고 차고 차곡 넣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알맞게 후숙된 딸기를 내어줄 참이다.

얼마의 시간이 허락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와 내가 남은 생애 쌓아갈 추억 조각들과 또 내가 우리 딸들과 만들어갈 남은 시간들을 잘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에게 손질해 놓은 딸기를 내어 주었더니 맛있게 먹으며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는 자기 포크로 크고 탐스러운 딸기 한 송이를 집어 내 입으로 갖다 댄다. 엄마 아 해봐. 아이가 먹여준 달콤한 딸기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한동안 딸기를 보면 나는 우리 엄마와 이 사랑스러운 딸아이 얼굴이 피어오를 것 같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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