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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대표의 단식투쟁 가면극

2023-09-07 (목)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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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무기한 단식이 또 한 번 정치 회오리를 일으켜 놓았다. 야당 대표의 갑작스런 극한 행동에 파장이 클 법도 했지만 예상 외로 시큰둥한 분위기이다. 여당에서는 뜬금없는 방탄 ‘발버둥’이라는 내용의 논평이 나왔고 반 정부 진보 언론들마저 부정적 내지 이재명의 실족이라는 보도를 내놨다. 이재명 대표는 무기한 단식 이유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 권력 폭주를 비난하고 개각을 요구했다.

그런데 장황한 이 대표의 단식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반응이 왜 이리 의아하고 냉소적일까. 이 같은 이재명 대표의 단식 혐오 현상은 그의 단식 설명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의 깜짝 단식은 어떤 식으로 가설을 붙인다 해도 자신의 구속을 피하기 위한 안간힘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10여개에 달하는 범죄 혐의 사법 리스크와 더불어 민주당 내에서도 대표직 사퇴 압력이 점증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소동에는 벌써부터 ‘웰빙 단식’ ‘출퇴근 단식’ 등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낮에는 내용물을 볼 수 없는 플라스틱 병에 음료수를 마시고 저녁 잠자리는 기자들 출입이 금지되고 측근들만 출입할 수 있는 대표실에서 밤을 보낸다. 단식에 대한 진정성이 없고 사기성이 농후한 인상을 주고 있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손학규, 이정희 등의 단식은 이재명처럼 사법 리스크라 전혀 없는 순수 정치 발전을 위한 희생적 결행이었다. 그 분들의 단식은 24시간 공개된 장소, 언론인들의 취재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맹물과 약간의 소금만으로 지탱하는 단식이었다.


단식으로 김영삼은 전두환을 굴복시켰고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여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 냈다. 김대중은 지방자치제 제도화를 성공시켰고 손학규, 이정희는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통과시키는 등 단식의 이유와 목적을 이루어 낸 존경받는 단식이었다. 이재명의 단식 이유는 ‘민주주의 파괴’라고 했는데 의회 정족수 3분의 2에 육박하는 거대 야당의 대표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의회 권력을 앞세우고 검찰을 오히려 압도하며 수시로 장관 해임안을 결의하며 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이재명 대표 본인 아닌가. 자신의 민주당 독재 운영과 공포 분위기를 오히려 반성해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재명은 또 단식의 구실로 ‘정부의 무능’을 내걸었다. 이 대표의 비난이 아니라도 윤석열 정부의 무능은 국민 대다수가 통감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정치를 이끌고 있는 야당은 책임이 없나? 윤석열 정부가 출발하는 날부터 야당은 단 하루도, 법안 한 개도 협조해 준 일이 있었는지를 반성해 봐야 한다. 윤 정부의 무능을 함께 책임져야 할 처지에 무슨 ‘사즉생 무기한 단식’으로 반항을 해보겠다는 건지 설득력이 없다. 이재명은 이번 단식 소동에 ‘국민 항쟁’이라는 언어를 활용했는데 국민들이 자신의 정견에 동의하는지를 분별하지 않은 국민 선동에 방점을 둔 인상이 짙다. 공자는 백성을 존중하라며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즉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경구라고 믿는다. 이 대표가 정치 명운을 내걸고 있는 듯한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 투쟁에는 전적으로 함께 하겠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의회 권력을 쥔 야당 대표로서 국가의 기본 금도를 지켜야 한다. 국내에서 여야의 격렬한 토론 논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내부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쟁점을 일본, 중국, 미국 정부와 국제단체에 들고 가 2개의 외교 채널을 획책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한선을 훨씬 넘어간 망동이다.

정치 지도자라면 좀 더 건전하고 신중한 언행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사즉생 무기한 단식투쟁’의 결기가 있다면 좀 더 차원 높고 진정성 있는 큰 걸음을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당장 한반도에는 북의 핵 위협과 남의 이념 논쟁 소동 등으로 혼란 국면에 놓여있다.
이재명 대표는 북한의 핵 위협, ‘남한 점령’ 전쟁 공갈에 제동을 거는데 앞장서야 한다. 또한 남한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 북한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움직임도 완화하도록 건의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남북을 평화 분위기, 나아가서는 통일의 길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야당과 이재명의 권리요, 의무요, 책임이라고 본다. 이재명 대표는 당장이라도 치졸한 사즉생 무기한 단식 가면을 벗어놓고 순수의 본업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순순히 법정에 나와 심판을 받고 유죄 또는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민을 혼란으로 부터 구하는 결단이라고 본다.(571)326-6609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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