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촉의 하나인 조선/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1929.동아일보 4월 2일 게재)
이 짧은 시는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961-1941)의 시로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외에도 타고르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완벽한 시 <패자의 노래>(The song of the Defeated. 1916) 한 편이 더 있으나 지면상 생략한다.
본인은 지난 27일 인도 총영사관에서 인도 총영사가 초대하고 Shanti Fund와 다민족문화협의회 뉴욕지부가 마련한 ‘한국과 인도 합동독립기념축하’ 행사에 주최측으로부터 시 한편을 낭송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녀왔다.
시 낭송을 준비하면서 앞에 언급한 타고르의 짧은 시를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주제넘은 발상인 것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양국의 출연진 중에 누가 이를 혹 언급할지도 모르겠기에 내게 주어진 시만 낭송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타고르나 이 시를 언급하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었다.
타고르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우리 민족에게 깊은 격려와 위로를 준 시인이었다. 그는 독립운동가요 고승(高僧)이자 시인이신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도 영향을 끼친 큰 시인으로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항거하며 시집 <기탄잘리 Gitanjali: 신께 바치는 노래>를 펴냈고, 이로 말미암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1913년)을 받았다.
만약 본인이 그날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한 편을 더 낭송했었다면 참석했던 인도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들도 이 시를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본인이 낭송한 시는 조지훈의 <산상(山上)의 노래>라는 시였다. 시간의 제약때문에 영역본은 팸플릿에 싣기로 하고 낭송은 우리말로만 했는데 주최측의 실수로 영역본의 뒷부분이 잘려버려 아쉬웠다.
”높으디 높은 산마루/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듯 기대어/내 홀로 긴 밤을/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아, 이 아침/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이제 눈감아도 오히려/꽃다운 하늘이거니/내 영혼의 촛불로/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위/떠오르는 햇살은/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오래 잊었던 피리의/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사슴과 토끼는/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내 홀로 서서/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광복 후 민족의 미래를 고고한 태도로 모색하는 지사적인 풍모를 형상화하고 있는 시이다. 일제 강점기를 견디고 나서 광복을 맞이하였음에도 기쁨은 잠시 민족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드러낸 시라고 할 수 있다.
알기 쉽게 풀어 해석하면, 과거에 높은 산마루에서 이 부정적 상황(일제강점기)을 극복하기위한 방법(광복)을 찾으며 울어왔다. 이제 아침이 와서 부정적 상황으로 인해 피폐해진 현실이 나아지는 소리가 마치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상황이 좋아지니 눈을 감아도 하늘은 아름답기만 하다.
과거에서 떨던 샛별은 내 영혼의 촛불 속으로 숨게 하여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마 위로 떠오르는 햇살 역시 좋고, 입술에도 피가 돌아 옛 피리 가락을 불 수 있게 되었구나. 즐거운 세상이다, 새들아 즐거이 노래를 부르자. 그러나 사슴과 토끼야, 이 좋은 것들은 가지고 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며 나누거라(남과 북이 각각 미국과 소련에 의해 통치되며 분열할 것에 대한 염려). 이제 이 햇살 가득한 산마루에서 맑은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나는 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해(민족이 하나 되는 현실) 노래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한-인도 공동 독립기념일 축하 프로그램에 고인(조지훈 시인) 대신 참여하여 문학, 스토리텔링, 영화, 음악, 춤, 연설 등 예술을 즐기고 함께 식사를 하며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음에 주최측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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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