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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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3주 나효신/작곡가

2023-08-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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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이야기(3)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시티 라이츠 서점(City Lights Booksellers & Publishers)은 1953년에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건재하다. 나는 이곳보다 훨씬 더 큰 서점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이곳보다 더 좋은 서점들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지하층, 1층, 2층으로 이루어진 시티 라이츠 서점에는 다른 서점처럼 같은 책이 여러 권 진열되어 있지 않고 한 권씩만 진열되어 있다. 책의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뜻이다. 시, 소설, 번역본, 정치, 역사, 철학,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 매우 많다. 이 서점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더 빨리 버는가, 이런 내용을 가진 책을 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드문드문 의자가 놓여 있어,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로렌스 펄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 1919년 - 2021년) 님이 이 시티 라이츠 서점의 문을 연 지 2년 후인 1955년부터 그는 출판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출판한 첫 책은 그 자신이 쓴 시를 모은 시집이었다. 1919년에 태어난 그가 약 36세였을 때의 일이었다. 펄링게티는 1953년에 친구 한 명과 500불씩 각각 투자하여 서점을 함께 열었고, 1955년부터는 그 혼자서 서점과 출판사를 경영했다. 100년 넘게 살다 떠난 한 사람이 이룩한 이 서점과 출판사는 그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며 올해에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나의 남편은 지난 29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후학을 키워 왔는데, 이제 두어 주 후에 퇴직을 한다. 긴 세월 동안 거의 매일 제자들을 가르치고 본인의 연습을 한 연구실에는 책들이 많다. 음악에 관한 책과 악보도 많지만, 여러 다른 내용을 가진 책도 많다. 우리는 지난 3개월 동안 며칠에 한 번씩 그의 연구실에 가서 책을 집으로 가져왔다. 한 권, 한 권, 펼쳐 보며 집이 아닌 곳에서 그가 혼자 모아 온 책을 통해 내가 미처 몰랐던 그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 집에는 벽이란 벽은 모두 책으로 덮여 있고, 바닥에도 많은 책들이 높이 쌓여 있다. 꼭 읽고 싶었던 책! 그 한 권... 또 한 권... 이 귀한 책들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오겠지... 책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지난 일요일에 우리는 좋아하는 그곳 시티 라이츠 서점에 또 갔다.

정리해야 할 책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또 한 권의 책을 사 들고 나서며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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