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새은/주부

2023-07-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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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을 다한다는 것

워킹맘으로 살며 일도 육아도 해치우듯 했다. 완성도를 중시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가 중요했고 크게 구멍 나지 않을 정도로 마무리하면 괜찮은 하루라 여겼다.

둘째 출산과 함께 미국생활을 시작하며 인생에 잠시 쉼표가 찍어졌지만 가만있지는 못했다. 초반에는 빨리 집은 안정시키고 첫째 학교적응을 시키는데 몰두했고 주말이면 뷰 포인트를 찾아 떠났다. 자기계발에 대한 열정으로 미라클모닝을 하고 둘째 낮잠시간이면 유튜브를 틀어 놓고 운동을 했다. 막상 힘들었던 건 집안일이었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던 내가 하루 세끼를 남편, 5세, 이유식으로 나누어 차려내야 했고 매번 어질러지는 집정리는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 도와줄 가족, 친구 하나 없는 타지에서 내 시간은 없는 것 같아 조급함이 들었다.

10년 전쯤 샀던 ‘The One Thing’이란 책을 미국에도 가지고 왔는데 얼마 전 남편이 이 책을 다시 읽어보라며 내밀었다.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으니 정말 중요한 리스트를 뽑아보라는 말과 함께. 막상 나의 원씽을 뽑아보려 하니 고민이 많이 되었고 그동안 나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르고 일을 펼치기만 했구나 싶었다. 딸 플레이 데이트 날 인도 엄마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의 원씽은 영어실력향상과 다이어트라고 말했더니 의아하다는 듯이 너는 이 두가지 모두 할 필요가 없다며 정말 좋아하는 걸 찾아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뻔한 목표만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 같았고 나의 목표는 액션아이템으로만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었다.


우선순위를 매기기보다 나의 하루에 정성을 담아 보기로 했다. 마음먹기에 달린 건지 자주 보는 유튜브 요가채널의 ‘한 동작 한 동작 정성껏 해보세요’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소소한 일에도 나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정성’은 ‘열심’과는 달랐는데 노력하는 삶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만족감을 느꼈고 아이들의 놀이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며 남편에게는 배려와 다정함을 건네게 되었다. 모든 일에 정성을 쏟을 수는 없기에 자연스레 힘을 주어야 할 곳과 뺄 곳이 구분되었는데 비로소 나만의 원씽을 찾을 첫 발을 내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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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은씨는 한양대학교 재료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5세,1세 남매를 키우고 있으며 작년 육아휴직 후 주재원 남편을 따라 미국 산호세로 오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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