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 품은 작은 섬… 대숲 사이 천수만, 천지가 선경이더라

2023-07-14 (금) 홍성=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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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홍성 서부면 죽도와 남당항

온라인 지도에서 ‘죽도’를 검색해 보니 전국에 대충 10개가 넘는다. 대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을 텐데 대개는 작은 섬이다. 흔한 지명이지만 충남 홍성군 죽도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군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홍성에 바다가 있느냐고 의아해하던 사람도 ‘남당항’을 얘기하면 그제야 “거기가 홍성이었어?”라고 반문한다. 홍성의 해변은 북쪽 궁리항에서 남쪽 홍성방조제까지 약 10km에 불과하다. 어디서나 천수만 바다와 그 너머 태안 땅이 걸리는 노을 전망대다. 죽도와 홍성의 해안도로를 하나로 묶으면 옹골찬 하루 여행 코스다.

■3개 전망대마다 다른 바다 풍경

섬 여행엔 언제나 날씨가 변수다. 장맛비가 잠시 주춤한 지난 30일 오전 천수만 바다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죽도로 가는 여객선도 발이 묶였다. 남당항에서 죽도까지는 40인승 홍주호가 하루 5회 왕복한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엔 오전 10시 한 차례 추가 운항하고, 죽도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5시다.


점심시간을 넘겨 차츰 안개가 옅어지고 마침내 오후 1시 배부터 정상 운항이 재개됐다. 바다 날씨는 종잡기가 힘들다. 출항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죽도가 잠시 뒤 거짓말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섬 위로 잠깐 푸른 하늘이 비치기까지 했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가 싶던 포구는 햇살이 사라지자 다시 어두워졌다. 지나 온 남당항도, 천수만 건너 안면도도 변덕스러운 해무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죽도는 정말 작은 섬이다. 새 머리와 날개처럼 3개의 봉우리가 가느다랗게 연결돼 있고, 사이사이에 작은 해변이 파고든 모양새다. 선착장에 내려 2개 마을과 3개의 전망대를 연결한 산책로를 모두 걸어도 4km가 되지 않는다. 전망대라야 해발 10m 남짓하니 평지나 마찬가지다. 2시간이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선착장에 내려 둥그런 포구를 한 바퀴 돌면 제1조망쉼터로 오르는 산책로다. 짧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솔숲을 통과한다. 대나무가 많은 섬에서 유일한 소나무 숲이다. 해안 언덕으로 연결된 산책로 모퉁이에 간이 쉼터가 있다. 바로 앞으로 죽도에 딸린 또 작은 섬들이 보인다. 물이 빠지면 구슬을 꿰듯 서로 연결되는 섬이다. 산책로는 아담한 몽돌해변을 돌아 본격적으로 대나무숲으로 이어진다. 굵고 탐스러운 대나무가 아니라 손가락 정도 굵기에 어른 두 키 정도의 크지 않은 대나무다.

탐방로는 빽빽하게 자란 대숲 사이로 오솔길처럼 연결된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목재 덱과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제1조망쉼터에 오르면 주변 풍광이 확 트인다. 작지만 천수만을 전부 거느린 섬이다. 북측으로 전도 모도 오가도 명덕도 등의 무인도 윤곽이 한층 또렷하다. 사람이 살지 않은 섬은 새들이 주인이다. 어떤 섬은 가마우지가 차지하고, 어떤 섬은 백로가 점령했다. 이따금씩 지나다니는 어선 위로 물새들이 열을 지어 날아간다. 수평선에 길쭉하게 이어진 안면도 수면에 엷은 안개가 깔리고 무리 지어 나는 새들이 선경을 빚는다.

쉼터에서 내려오면 탐방로의 해안 덱을 걷는다. 해수욕장이라 하기에는 모래가 부족하고 갯벌이라 하기에는 자갈이 많은 해변이다. 바로 앞에도 2개의 이름 없는 섬이 보인다. 물이 빠지면 죽도에서 걸어갈 수 있다.

잘록한 해안을 거쳐 다시 마을을 통과하면 제3전망쉼터로 오르는 탐방로가 나온다. 들머리에 바로 앞 섬을 액자에 담은 형상의 설치미술 겸 쉼터가 조성돼 있다. 이어지는 대숲 오솔길은 섬에서 대나무가 가장 빼곡하다. 해안 모퉁이를 돌아 쉼터 꼭대기에 오르면 죽도와 주변 섬 풍광이 한눈에 조망된다. 일렬로 늘어선 것처럼 보였던 북측의 딸린 섬들이 앞뒤로 입체감을 드러낸다. 방향이 살짝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광이다. 그사이 바닷물이 빠지면서 죽도와 서쪽의 작은 섬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섬의 남쪽 해변이다. 굵고 성근 돌멩이에 모래가 조금 섞여 있다. 이른 휴가를 온 가족이 바위틈에서 조개를 줍는다. 아이들과 쌓는 추억이고 재미다. 22가구가 살고 있는 섬에는 6가구가 민박 겸 식당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상점도 있으니 혹시나 마실 물이나 주전부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해도 걱정할 건 없다. 관광지로 제법 알려지고 있지만 주민들의 삶터는 여전히 천수만의 풍성한 어장이다. 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대하가 특히 많이 나는 바다다.

다시 마을을 통과해 선착장 바로 위의 제2조망쉼터에 올랐다. 포구를 서성이던 동네 강아지가 살갑게 길잡이로 동행했다. 앞서가다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자꾸 뒤돌아보는 폼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꼭대기에 오르자 어선이 정박한 조그만 포구가 코앞에 내려다보이고, 섬 북측 섬은 방향을 달리하며 또 낯선 풍경을 빚는다.

청아한 하늘과 푸른 바다는 끝내 보지 못했지만 흐리면 흐린 대로 하늘을 담은 바다색이 오묘하다. 뻔하지만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 옹골찬 섬과 바다 풍광이다.

■짧은 해안 어디나 노을 전망대

홍성의 해안은 서산A지구 방조제 바로 아래 궁리항에서 보령과 경계인 홍성보령방조제까지 이어진다. 관광지로 제법 알려진 남당항을 제외하면 대개 소박한 갯마을이다. 바로 앞 천수만 너머로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태안반도가 뻗어 있다. 어디서나 바다와 육지가 조화를 이룬 해넘이를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수 킬로미터 이어져 또 다른 감성을 부려 놓는다.

궁리항에서 조금 내려오면 어사항이다. 한적한 포구 북쪽에 어사리노을공원이 있다. 남녀가 마주 보고 있는 조각 너머로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물이 빠지면 조개잡이 작업 차량이 드나드는 바닷길로 무한정 걸어도 좋은 곳이다.

어사항에서 남쪽 모퉁이를 돌면 ‘남당항노을전망대’가 있다. 바다로 휘어진 길모퉁이에서 딱 그 모양대로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해상 전망대다. 해가 질 무렵이면 천수만 바다와 물기 촉촉한 갯벌까지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 전망대 아래에는 홍성에서 보기 어려운 모래사장이 제법 넓게 펼쳐져 있다. 바닷물이 드나든 자국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변변한 해수욕장이 없던 홍성군은 4년 전 거친 돌부리만 가득했던 이곳에 다량의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해변을 만들었다.

궁리항과 어사항 사이 옛 속동전망대에는 65m 높이 홍성스카이타워가 세워졌다. 올 하반기 시험 운영을 거쳐 내년에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홍성=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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