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일평생 평균이라는 잣대가 졸졸 따라다닌다. 우리는 평균에 얼마나 근접한가, 또 평균을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 가에 따라 평가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평균적인 학생의 성적과 비교돼 등수와 등급이 매겨지고, 대학에 지원하면 등급과 시험 성적이 지원자 평균치와 비교 당한다.
취업이 되고 나서도 연례 평가로 해당 직무 수준에서의 직원 평균치와 대비돼 또다시 비교당하기 십상이다. 평균주의자들은 대체로 살인, 자살, 결혼의 통계를 이런저런 현상에 대한 시대적 균일성의 증거로 내놓고 있다.
우리는 퍼센트의 정도에 따라 고생길이냐 성공행이냐가 갈린다. 운명이 개인적으로 정해지기보다는 통계적 그룹의 일원으로서 배당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묵인할 경우 이 미신은 장차 인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파멸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토드 로즈의 ‘The End of Everage’ 중에서)
맥도날드는 정교한 평균화 전략으로 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빅맥은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하다. 평균화 된 크기, 평균화 된 맛과 가격, 평균화 된 매장 분위기, 평균화 된 직원 매뉴얼이 인스턴트(instant)의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파고들어 중독 시킨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논리 안에는 기계적인 평균화를 추구하는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와 비슷한 개념이 들어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말했다.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중 누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모두 무엇으로 분류되었는가로 인해 죽음을 당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은 평균주의의 합리성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집시, 장애인과 같은 열등한 인간이 없는 최우수 게르만 국가의 건국을 염원했다.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 작업을 떳떳이 수행했고 철저한 인종차별 정책을 밀고나갔다.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악행은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논리 정연한 우생 통계학의 이름과 질서정연한 준법정신 그리고 충실하게 복종하는 제복 입은 자들에 의해서 실행된 합리적 작품이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종 대학살을 가능케 하고 대중이 순응토록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평균화 작업을 통해서 개인적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둘째, 특정한 사람으로 범주화하는 것이다. 인종 대학살의 범주화란 ‘유대인은 필연 멸절되어야 한다’ 는 명제를 말한다.
이처럼 평균주의의 허상은 순진한 인류를 수없이 속여 왔다. 일부 인류는 지금도 속고 있다. 당신은 리더인가. 평균주의의 허상에 속지 않았던 청교도의 개척 신앙을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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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