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
▶ 더 브로드, 120여점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전시
키스 해링이 1989년 11월 아트센터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제공]
키스 해링의 작품에는 개가 컹컹 짖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아기들이 기어 다니고 춤꾼들이 서로를 의지해 인간 탑을 쌓으면서 어우러진다. [더 브로드 제공]
뉴욕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1958-1990)의 수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음은 기쁨이다. 뮤지엄 더 브로드가 ‘키스 해링’ 특별전을 열고 있다. 키스 해링의 방대한 작품을 선보이는 LA 최초의 박물관으로 ‘더 브로드의 키스 해링: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Keith Haring: Art is for Everybody)이 전시 제목이다. 뉴욕의 비주얼 아트스쿨에 재학 중이던 1970년대 후반부터 작가가 31세의 나이에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기 불과 2년 전인 1988년까지 작업한 총 12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해링이 작업한 비디오, 조각, 드로잉, 페인팅, 그래픽 작업의 폭넓은 매체와 지하철 도면에서 작가의 막대한 공공 프로젝트도 공개된다.
키스 해링은 필라델피아 쿠츠타운에서 성장했다. 기독교 문화와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은 보수적인 도시 필라델피아는 키스 해링에게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호기심 많고 열정이 가득한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 TV와 매거진을 대중문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15년 전 키스 해링이 세상에 남긴 일기장이 책으로 나왔다. ‘예술’을 길거리에서 창조해낼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팝 아티스트가 1997년부터 1989년까지 10여 년간 써내려간 저널이었다. 파리, 베를린, 밀라노, 런던, 함부르크, 마드리드, 도쿄 등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색칠하고 사색하고 사랑하던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탐구하는 예술을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창조해낸 작품은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날 때에야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22번가 조각 작업실에서 바닥에 놓는 커다란 작품들을 전시했고, 그때마다 내 의도가 성공했다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실 건물에는 22번가로 바로 통하는 큼직한 출입문이 있다. 나는 건물로 스며드는 햇살을 이용하려고 문 옆에서 작업했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여유롭게 내 작업과 작품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내 작품을 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내게 말해주었다. 하나의 작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과 생각과 해석을 듣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내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이런저런 말을 했던 사람들의 ‘유형’이었다. 그들은 화랑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뉴욕 현대미술관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무시받는 대중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았다. 예술이 그들에게 문을 열 때 그들도 예술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무거운 주제를 밝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키스 해링은 1980년대 초 자신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며 지저분한 낙서만 가득하던 뉴욕의 지하철 검은 광고판에 하얀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하철 드로잉’은 어둡고 탁한 지하철 역사를 즐겁고 환한 장소로 탈바꿈시켜주었고 통근하는 뉴욕 시민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 파리, 런던, 니스, 베를린, 크노케, 밀라노, 함부르크, 마라케시, 마드리드, 몬테카를로, 도쿄 등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한 벽화 작업으로 이어졌고, 뉴욕 타임스스퀘어가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거리, 피사의 성당 외벽, 베를린 장벽, 도쿄의 간판 등에 남겨진 그의 작품들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도시의 랜드마크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키스 해링’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나면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키스 해링의 그림은 한 번만 봐도 마법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다. 단순한 선과 형태, 경쾌한 원색, 왠지 ‘나라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그의 그림은 쉽고 친근해 보인다. 하지만 키스 해링 작품의 본질은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하는 ‘움직임’과 ‘선의 혼’이다. 그는 슬픔과 기쁨의 비유적 묘사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때로는 무심한 듯한 이미지들을 만들었고 그 해석을 대중들의 몫으로 남겼다. 예술작품의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라는 굳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더 브로드가 오는 10월8일까지 전시하는 ‘키스 해링’ 특별전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담, LA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 음악 공연, 1980년대 클럽 서킷에서 활동했던 해링의 개인 서클 멤버들이 주최하는 이벤트 등이다. 브로드 큐레이터이자 전시 매니저인 세라 로이어가 큐레이팅한 이번 전시회는 해링의 예술적 실천과 삶을 탐구하게 된다.
뮤지엄 입장은 무료이나 특별전 관람은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가격 22달러. 자세한 사항은 브로드 뮤지엄 웹사이트 thebroad.org/art/special-exhibitions/keith-haring-art-everybody 참조. 이 전시는 오는 11월11일 캐나다 토론토의 아트 갤러리 오브 온타리오를 거쳐 2024년 4월27일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워커 아트 센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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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