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초대로 지난 4일 베벌리 힐스의 한 컨트리클럽에 갔다. 클럽이 주최하는 독립기념일 축하파티 자리였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과 다양한 놀이시설, 밤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화려한 불꽃놀이를 즐기며 참석자들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그곳에서 머문 시간이 오래다보니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연방대법이 어퍼머티브 액션(소수계 권익옹호조치)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 지난 29일, 불과 며칠 전인 탓이었다. 대학들이 지난 40년 입학사정 시 적용했던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가 평등을 보장한 헌법과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에 저촉된다고 연방대법은 결론 내렸다. 어퍼머티브 액션을 고집하기에 이 사회는 많이 평등해졌고, 특히 이는 아시안 학생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드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인종 이슈를 생각해보았다. 미국은 얼마나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일까.
그 클럽은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기존회원의 추천을 받아야하고 거액의 가입비와 연회비를 감당할 만한 재력이 있어야 한다. 자연스레 회원은 이 사회의 상류층으로 제한된다. 클럽회원과 그 가족친지들로 구성된 참석자들은 대부분 백인, 간간이 아시안과 다른 소수인종이 보였다. 반면 음식시중을 들고 테이블을 치우는 직원들은 거의 전부 라티노였다.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보편적인 인종분포이다. 소수계가 양념처럼 섞여있을 뿐 전반적으로 하얀 사회이다. 층층이 자리 잡은 인종적 편견을 뚫고 한인 등 소수계가 기어이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이기도 하다.
교육이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이 바닥에서 상층부로 오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한인부모들이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지상목표로 삼으며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입 소수계 우대정책은 한인들에게 상당한 상처가 되었다. 한인 등 아시안 학생들은 다른 인종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가지고도 불합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캠퍼스 내 인종적 다양성을 위해 대학들이 인종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적용한 때문이다. 2004년 12월 발표된 한 보고서에 의하면 명문 사립대 입학사정 과정을 조사한 결과, 지원자의 SAT 점수는 더해지기도 하고 깎이기도 한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230점, 185점씩 가산되고, 아시안은 50점 감산되는 식이다.
입학사정은 대학이 특정 학생에 대해 문을 열거나 닫는 결정이다. 합격자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 공부할 기회를 얻고, 불합격자는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소수계 우대정책이란 환경이 척박해 양질의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점을 감안, 소수인종에 대해 문을 좀 관대하게 열어주는 제도이다. 그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막상 그로 인해 자녀가 피해를 보게 되면 분노하게 되는 것이 부모마음이다. 많은 한인들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판결을 환영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분노해야 할 것이 소수계 우대정책이었을까. 일반 지원자들에는 깐깐한 대학들이 특권층에게는 문을 활짝 열고 ‘어서 오시라’며 환영한다면 어떨까. 대부분 고소득의 백인들인 특권층 우대는 명문 사립대학들의 오랜 전통이다.
소수계 우대정책에 제동이 걸리자 흑인 라티노 민권단체들은 하버드의 동문자녀(레거시) 입학 우대정책이 민권법을 위반한다며 당국에 고발했다. 하버드가 인종적 다양성을 내걸고 소수계 몇 명의 입학을 허용했을 때, 특별대접을 받으며 대거 입학한 학생들은 따로 있었다. 동문, 교직원, 거액 기부자, 저명인사의 자녀들 그리고 운동선수 등 예체능계 특기생들이다. 앞의 SAT 관련 보고서를 보면 운동선수에게는 200점, 동문 자녀에게는 160점이 각각 가산되었다.
명문대학들이 동문자녀 우대정책을 도입한 것은 1920년대였다. 공부 잘하는 유태인 입학생 숫자가 자꾸 늘어나자 대학의 물이 흐려진다며 학교당국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대학의 전통과 명문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앵글로색슨 백인 개신교 집안 자제들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이들 기득권층을 우대하는 전통은 이어졌다.
2019년 전국 경제 연구국 보고서에 의하면 하버드 대학과정 입학생의 43%는 일반 학생들이 아니다. 레거시, 운동특기생, 학장들이 따로 챙기는 거액기부자나 저명인사 명단의 자녀들 혹은 교직원 자녀들이었다. 레거시 지원자의 거의 70%는 백인. 우수한 아시안 학생들을 밀어낸 것은 소수계라기 보다 백인 기득권층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경제적 양극화로 가진 이들은 점점 강력한 날개로 훨훨 날아오르고, 없는 이들은 빈곤의 늪으로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한 지붕 두 나라이다. 바닥의 그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신분상승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그것이 인종적 평등이라는 먼 목표로 다가 가는 길이기도 하다. 소수계 우대정책은 막혔지만 대학들은 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새로운 전략들을 모색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는 아래가 아니라 위로 향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자들이 일어서기 위해 부여잡는 지팡이 같은 작은 혜택이 아니라 기득권층이 당연한 듯 누리는 전방위 특권들에 우리는 분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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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