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오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엄청나게 꼬불거리는 산길이기도 했지만, 연휴에 가서인지 교통 체증이 심했다. 처음에는 기어가듯 움직이다가 국립공원 입구를 3마일 앞두고서는 차들이 멈춰 서 버렸다.
처음에는 무슨 사고라도 났나 했다. 사고 지점을 지나고 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30분을 기다렸다. 깊은 산 속이라 네트워크 망도 잡히지 않아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도 답답했지만,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더 힘들었다. 더 일찍 집에서 나올 걸 후회도 들었다. 1시간, 2시간… 정체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과 후회의 마음이 깊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7개월 된 딸이었다. 구불거리는 산길 때문에 멀미도 심했을 텐데 차가 멈춰 있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짜증은 곧 울음으로 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고 막무가내로 울어 댔다. 결국 아기를 둘러업고 차 밖으로 나갔다. 바람을 쐬니 아기가 울음을 딱 그쳤다. 앞을 보니 눈길이 닿지 않는 저 먼 곳까지 차들이 멈춰 서있었다. 입구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 인 걸까.
나는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땡볕을 가려줄 모자를 썼다. 두 시간 동안이나 우리를 길에 가둔 게 뭔지 알아내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아버님이 함께 가주셨다. 나와 보니 우리처럼 답답함을 참지 못해 길로 나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버님과 함께 걸으니 1차선 도로에 꽉 들어차 있는 자동차 보다, 높은 하늘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장했던 마음이 무색해질 만큼 자연은 평화로웠다.
여행의 묘미가 이런데 있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면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버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에만 집중하게 된다. 낯선 여행길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니, 우리는 현재 함께 있는 사람들과 도모하여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직 현재만 중요해진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과거와 미래로 부터 해방시키는 경험을 한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트렁크 문을 열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커플, 차 지붕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맞고 있는 아이, 운전석에 다리까지 걸치고 음악에 발을 까딱 거리는 사람까지. 그들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30분 정도를 걷자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구가 나왔다. 교통 체증의 원인은 사고도, 자연재해도 아니었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사람이 많이 몰려서 입장이 늦어지는 것이었다. 공원 안내원은 미국 특유의 느긋한 일 처리 방식으로 표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순간은 유일하며 다시 오지 않는다. 그 말을 되뇌며 맞는 산바람이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