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한반도의 이권을 둘러싸고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화 한다. 그 원인이 조선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발생했다는 보수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친일파들의 식민지 사관을 바로잡지 않는 한 한국은 근대사의 질곡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특히 일본의 근대화를 표방한 갑신정변이나 갑오경장과 달리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적인 개혁을 추구한 동학혁명과 동도서기론을 내세운 고종의 광무개혁을 주목해야 한다.
메이지유신을 뛰어넘는 광무개혁의 성공에 불안해진 일본은 서둘러 개화파들을 포섭하여 친일파를 양성하고 한반도를 식민지화한다. 한반도 침탈의 야욕이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 실패의 원인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야욕에서 발생한 것이다. 고종은 동도서기론을 내세워 문호를 개방하고 빠르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국가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외국에 사절단을 보내 세계정세를 돌아보게 했고 제중원과 육영공원을 세우는 등 성공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각종 문물제도를 서양식으로 고치고 근대적 기반시설들과 교육기관들을 설치하였다. 다양한 학교와 병원들이 속속 설립되었고 전기와 전차회사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불평등조약인 강화도 조약으로 을사늑약과 경술국치의 단초를 만들고 제물포조약으로 마침내 한반도 식민지화를 실행에 옮긴다.
대륙침략의 교두보로서 한반도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이 자주적 근대화에 성공하여 강국이 되면 동북아를 점령하려는 제국주의적 야욕에 빨간불이 켜지게 되는 것이다.
근대사회에 발생한 세계 3대 시민혁명은 절대군주제를 타도하고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시민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대변혁 과정이었다. 시민혁명의 결과로 민족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등장했다. 근대 민족국가를 탄생시킨 시민계급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조선말기는 근대화의 물결을 주도할 경제력이 급팽창하던 시기였다. 상업과 무역이 성행하여 농경사회에서 상공업사회로 전환하고 있었다. 실학사상의 발달은 개화의 근간을 더욱 다졌다. 자주적인 근대화의 기틀을 착실히 쌓은 것이다.
일찌감치 천주교를 통해 서구문물을 접한 조선은 민초들에 의해 일어난 동학혁명으로 근대화의 물결을 주도했다. 동학혁명은 민초들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프랑스 시민혁명에 버금가는 민중적 혁명이었다. 만일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광무개혁의 성공을 앞당겨 한국도 빠른 근대화로 일본의 침략을 저지할 충분한 국력을 갖췄을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동도서기론을 내세운 고종의 광무개혁이 동학혁명과 절충하여 성공했다면 한반도는 근대사회에서 입헌군주제로 자리잡으며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국가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한 잠재력과 민족성을 끊어버린 일본은 끊임없이 친일파들을 양성하여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를 말살해 왔다. 고종을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의 아이콘으로 변색시키며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한국의 기득권 세력을 세뇌시켜 온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동양문화의 보고로서 한민족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비록 일제 35년으로 잠시 끊겼다고 하나 해방후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세계경제 10권으로 급부상하며 그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제 경제와 국방은 물론 문화가 전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토록 열등민족으로 세뇌시켰음에도 고대시대 이래로 일본에 문화와 기술을 전파하여 문명화시킨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 것이다.
5,000년의 우수한 문화를 갖은 한민족은 남을 침략하거나 수탈하지 않고 오직 평화를 사랑하는 슬기로운 민족이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성을 지키며 마침내 인류문화의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토록 자랑스런 민족혼을 바로 세워 후세에 전해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역할이다.
<
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