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휴전된 지 70년, 우리는 아직도 북녘땅에 가지 못한다. 미지의 땅과의 사이에는 여전히 철책과 지뢰가 깔려 있다.
지난 20일부터 2주간동안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있는 삼성과 LG 대형 전광판에 6.25전쟁 한미참전용사 ‘10대 영웅’ 영상이 뜨고 있다.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국사령부가 선정한 10대 영웅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랄프 퍼켓 대령, 밴 플리트 장군 & 밴 플리트 주니어 대위, 딘 헤스 공군대령, 윌리엄 얼 쇼 군목 &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백선엽 장군, 김동석 육군 대령, 김두만 공군 대장, 김영옥 미 육군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으로 총 12명이다.
이들의 업적을 찾아본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일본에 주둔하다가 한국전쟁을 지휘하였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전세를 역전시켰다.
랄프 퍼켓은 1950년 11월24일 205고지 전투에서 수백 명의 중공군 공격을 받자 적의 기관총 사격에 자신을 노출시켜 부하들이 기관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특별한 영웅적 행동으로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밴 플리트 주한미8군사령관은 북한 순천지역에서 적의 대공포를 맞아 실종된 아들의 수색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1992년부터 한국과 미국에 기여한 인물에게 밴플리트상을 수여한다.
딘 헤스 공군대령은 6.25 항공전의 영웅이다. 전쟁초기 1년간 직접 250여 회나 출격해 큰 공을 세웠고 제주도에 보육원을 설립, 20여년간 전쟁고아 후원금 모금 활동에 앞장선 ‘전쟁고아의 아버지’다. 윌리엄 얼 쇼 선교사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 제도를 도입했다. 아들 쇼 대위는 정찰을 하던 중 인민군 공격으로 28세 나이에 전사했다.
또한 백선엽 육군대장은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를 치렀는데 후퇴하는 한국군을 막으며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한국군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김동석 육군 대령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 작전 당시 결정적 정보전 활동으로 뛰어난 인물이며 김두만 공군대장은 북한 후방보급 요충지인 승호리 철교를 미 공군이 500회 출격으로도 못 끊었으나 그가 저고도 폭격으로 폭파시켰다.
김영옥 육군대령은 아시아계 미군 최초로 미육군장교교육기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로 6.25당시 미 유색인종 역사상 첫 전투대대장을 맡았다. 뛰어난 전술 전략과 헌신적인 리더십으로 인종차별의 벽을 넘었다.
박정모 해병대 대령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1950년 9월27일 서울 중앙청에 걸린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달았다. 이처럼 6.25의 10대 영웅은 각각 훌륭한 업적을 보여준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6.25 당시 공적을 쌓았다. 미 동부지역의 현봉학 박사 공헌도 이에 못지않다.
현봉학 박사는 6.25 당시 흥남철수작전에서 피난민 10만여 명을 미 군함에 태워 살려낸 한국의 ‘쉰들러’로 불린다.
전쟁 후 미국에 와서 뉴저지 뮐렌버그 병원, 토마스 제퍼슨 의대 혈액병리과 과장, 서재필기념재단 초대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재미한인의학협회, 한인사회를 위해 평생 봉사했다. 1996~2002년 한국 아주대 병원 임상병리과 과장으로 후학들을 양성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2007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현봉학 박사의 일대기를 한국일보에 연재하면서 그를 만났었다. 한 번은 롱아일랜드 시티의 신문사로 오셨고 전철 N을 함께 타고가 맨하탄 32가 한인타운으로 안내해 드린 적이 있다. 대형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운전을 안하신다고 하셨다.
늘 활달하고 씩씩하게 활동한 현박사의 장례식에 11월의 겨울밤 두 시간 이상을 달려가 마지막 모습을 뵈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은퇴는 없다’는 자서전 제목처럼 평생 일하다가, 그것도 타인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다간 분이다. 나는 6.25 10대 영웅에 한 명 추가하여 11대 영웅으로 현봉학 박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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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