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뷰] “기억 속 그녀, 첫사랑을 끄집어내다”

2023-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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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의 배우 그레타 리

▶ 절제된 연기·감정 표현, 자연스러운 한국어 구사

그레타 리는 어떤 역할이든 그녀에게 시선을 향하게 만드는 천상 배우다. HBO ‘걸스’의 괴짜 수진부터 넷플릭스 ‘러시안 인형’의 맥신까지 TV 시리즈에서 신스틸러로 주목받던 그녀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만인의 첫사랑이 되었다. 올 상반기 최고의 영화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그레타 리(40·한국명 이지한)를 올해 초 베를린 영화제에 이어 지난 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그레타 리는 “셀린 송 감독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고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노라의 캐릭터에 푹 빠졌다. 우린 서로 너무 다르지만 닮은 점도 많았다”며 “스스로도 몰랐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녀는 “유태오가 해성으로, 존 마가로가 아서로 캐스팅되면서 2021년 여름 촬영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편한데도 영화가 끝나고 나니 한국어가 그리워졌다”며 “노라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작별하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프면서 복잡한 감정 그 자체였다”고 덧붙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노라(나영)로 등장하는 그녀는 절제된 연기, 감정의 동요 없이 ‘사랑’을 표현한다. LA에서 태어난 그레타 리의 듣기 좋은 한국어 구사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온 노라라는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그녀는 “해성과 아서 사이에 앉아 있는 노라를 보여주는 장면을 송 감독은 가장 중요시했다. 미국인 남편과 한국에서 찾아온 어릴 적 친구와의 사이에 앉아 있던 기억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했는데 이중 언어와 이중 문화권에 있다는 것에 대한 완벽한 은유”라고 설명했다.

인연과 전생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해성과 노라는 12년 간격으로 세 차례 만남을 갖는다. 첫사랑 나영(노라)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찾아다니는 건 한국에 사는 해성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극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와 동료작가 아더와 결혼한 노라는 늘 인생계획이 달랐다. 노라는 휴가 차 뉴욕을 찾은 해성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는 그녀에게 남편 아더는 “그 남자가 너를 만나러 13시간이나 날아왔다. 그를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만남을 권유한다.

그레타 리는 “전생과 인연은 한국적 개념이지만 이 영화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보편적으로 좋은 스토리는 문화적 특수성을 뛰어넘는다. 진솔하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영화가 ‘패스트 라이브즈’이다”고 말했다.

그레타 리는 이종걸 재활의학 전문의의 1남2녀 중 장녀로 LA에서 태어났다. 무성영화 시절 할리웃의 아이콘이던 그레타 가르보를 좋아했던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그레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제2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영국 배우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꿈꾸며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경력을 쌓았다.

2014년 에이미 폴러의 추천으로 NBC 파일럿 ‘올드 소울‘에 캐스팅되면서 코미디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을 알린 TV 시리즈는 HBO 시트콤‘ 걸스’(Girls)이다. 수진 역을 맡아 4편의 에피소드에 출연했고 그녀의 괴짜 연기가 각광을 받으며 코미디센트럴 시트콤 ‘인사이드 에이미 슈머’(InsideAmy Schumer), 폭스 드라마 ‘웨이와드 파인스’(Wayward Pines) 등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FOX 시트콤 ‘뉴 걸’(New Girl)에서 트랜의 손녀 카이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주연한 영화 ‘시스터스’(2015)의 대본을 받고 네일살롱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의 역할에 고민을 했다는 그녀는 이왕 연기할 거라면 이민자로서 당연한 액센트가 있는 영어를 구사하며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혜원은 할리웃이 갖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코리안 액센트가 강한 억척여성 역할이었음에도 그레타 특유의 괴짜 연기로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레타 리와 유태오가 주연하고 셀린 송 감독이 연출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23일부터 미 전역 확대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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