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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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 사각모자

2023-06-14 (수)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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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의 진풍경(珍風景)은 졸업생들의 복장이다.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 사각모자를 썼다. 이 이상한 복장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이 처음 생긴 것은 그리스이다. 평민들은 대학에 못들어가고 귀족이나 왕족의 자제들 기타 원로 정치가 등 특권층이 들어갔다. 그래서 대학 졸업식은 귀족들의 모임으로 대단한 행사였다.

그런데 어느 해 졸업식에서 학교 당국과 손님들을 몹시 화나게 한 일이 벌어졌다. 졸업생 전원이 노동자의 옷을 입고 미장이들이 흙을 이길 때 쓰는 흙손판을 들고 행렬하여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들과 귀빈들은 너무 놀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졸업생 대표가 설명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졸업하고 위대한 세계를 건설하려고 나가는 일꾼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옷은 노동복이며 손에는 흙손판(Motarboard)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일꾼의 복장이 아니겠습니까” 화를 냈던 귀빈들이 졸업생들의 정신을 알고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오늘날의 사각모자는 흙손판이며 가운은 노동복을 상징한다.


학교의 의미는 학위라는 명예가 아니라 일꾼 양성에 있는 것이다. 학교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회 건설의 역군을 훈련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교사의 사명은 막대하다.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모든 젊은 남자를 군대로 끌고 가고 장년을 탄광으로 보내고 젊은 여자들을 군대 위안부로 끌고 가면서도 학교 교사는 군대에 징집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사범학교에 들어가려고 하여 사범학교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대학이 엄청 많고 입학 경쟁은 계속하여 취직 경쟁으로 이어진다. 방과 후에도 학원에 다니고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를 한다. 그러자니 사회는 경쟁 사회가 되고 삶이 하나의 싸움터가 된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열심히 싸운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말이 ‘relax ’이다. 숨 돌리기를 뜻한다. 아웅다웅 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숨을 돌려가며 느긋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relax이다. 가지려고 버둥거리지 말고 이기려고 서둘지 말고 앞서려고 경쟁하지 말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사는 것이 relax한 삶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이것을 기독교에서 거듭남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한다. 행복의 포인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바둑에도 진리가 있다. 과욕필패(寡慾必敗)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진다는 말이다. 아생후공격(我生後攻擊) 내 말이 먼저 살고 남을 공격하라는 뜻이다. 공격만 생각하다가는 역습을 당한다. 인생의 진리가 바둑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바둑판을 인생의 축도라고 말한다. 내 아버지의 바둑 친구가 한약방 주부였는데 내가 “아버지 바둑이 그렇게 재미있어요”하고 물으면 “이 녀석아, 바둑은 재미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하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하셨다.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이란 오랜 교육 기간을 마치면 사회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사실 성공과 실패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학교나 부모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일하는 본인에게 달렸다.

무슨 일이든 노동은 신성하다. 철인 카라일은 “그대의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그 일은 이미 예배이다”고 말하였다. 노동을 예배로 본 것은 이 일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고 생각하여 열정과 정직으로 일하면 그 일이 이미 예배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의 일터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성한 장소이고 동료들도 하나님이 주신 동료가 된다. 노동관, 작업관이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일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의 공업 단지인 실리콘 밸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노동자의 12%는 자기 일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에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을 수입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행복에 이르는 작업관이 아니다. 하늘이 주신 나의 인생이라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어야 같은 일이라도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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