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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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의 제자와의 만남

2023-06-06 (화) 박문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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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어 통역 장교로 2년3개월 군 복무 후 처음 중등부 영어교사 발령이 난 곳이 울진 동해바닷가에 위치한 후포 고등학교였다.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어 발령 이듬해엔 중학교 3학년의 영어수업 및 3학년3반의 담임을 맡았다. 60여명으로 이루어진 남녀공학 반이었다. 1974년 교사생활 2년차, 반 학생들이 너무나 잘 따라주어 중고등부 전체에서 항상 우수반으로 선정되곤 했었다.

총20개 반으로 구성된 후포 중고등학교는 1년에 네번 큰 상이 수여되는데 그 대상으로는 수업 분위기가 가장 좋은 반, 출석률이 가장 높은 반, 환경미화가 가장 잘 된 반, 교실청소가 늘 깨끗하게 되어있는 반을 뽑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3-3반은 4개상 전부를 한 해에 수상하여 내가 경상북도 우수교사 표창까지 받은 적이 있다. 모든 일들이 담임선생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원들의 일심단결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저녁시간에 제자 몇 명이 하숙집으로 손수 만든 떡을 가지고 찾아왔다. 깜짝 놀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날이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 제자들이 생일을 축하하고자 떡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사랑하는 3-3반을 졸업시킨 이듬해 경주 지역으로 전근 후 1년 지나 교사직을 그만두고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그 동기는 결혼하여 자녀를 가지면 꼭 미국에서 공부시키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자력으로 미국에 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역회사에서 3년간 열심히 일한 후 미국 지사장 발령을 받고 LA에 지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곧 가족이 들어왔으며 5년의 임기를 마친 후 본사로 귀국하지 않고 자녀교육을 위해 이 곳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랑하는 3-3반 학생들과는 자주 소식을 주고받았다. 편지로 안부를 묻는 시절을 보내고 나중에는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게 되고 한참 지난 후 카톡으로 간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던 중 최근에 제자들로부터 한국 방문 초청이 왔다. 모임 장소는 대구의 아주 큰 식당, 21명의 제자들이 일요일 오후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루의 만남으로는 모교 방문이 불가능해서 전날 토요일 대구에서 떠나는 여행일정을 잡고 후포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성류굴과 죽변 모노레일을 타고 여러 관광지를 방문하며 하루를 후포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대구로 올라와 서울지역의 제자들과의 통합으로 큰 환영축제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내와 같이 참석했는데 “대환영”이라는 큰 현수막이 걸려있고 수많은 선물꾸러미가 쌓여있었으며, 각자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며 일일이 인사하던 중 제자들도 이제 60이 넘은지라 더러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총 21명의 제자들과의 모임에서 푸짐한 식사와 선물이 넘쳐 우리 부부는 너무나 감탄했다. 사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여서 성류굴이랑 여러 곳을 걸어 다닐 때 양 옆에서 여제자 2명씩 짝을 지어 나의 발걸음을 도와주었고 사고 없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울 제자들이 떠난 후 다음 날 다시 대구 제자들과 점심을 같이하고 헤어졌다. 미국으로 떠나오던 날 인천 공항에 제자 몇 명이 환송하고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었다. 우리 3-3의 사제지간의 만남은 스쳐지나가는 일순간의 인연이 아니라 영원한 인연이다. 내가 건강을 유지하여 그들과 계속 마음을 주고받고,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귀한 인연을 마지막까지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문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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