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기에 일어난 일이다. 미국인 손님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온갖 꽃이 섞여 있는 예쁜 꽃바구니를 들고 왔다. 다음날 나는 밖에 나가 나무 가지를 베어 동양식의 꽃꽂이를 수반에 꽂아 식탁에 올려 놓았다.
출근 후에 돌아온 남편은 아연실색이다. “어제 그 예쁜 꽃바구니를 누가 망가트렸냐”고 다그쳤다. “망가트리다니?” 내 눈에는 그것은 꽃들의 나열이지 정리된 꽃꽂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남편은 꽃꽂이에 나무가지가 있고 꽃들이 길고 짧게 꽂혀 있어서 매우 보기에 어색하다고 했다. 내 눈에는 그 꽃바구니는 무질서한 꽃들의 모음이지 정리된 아름다움은 결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때 두 문화권의 차이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결혼생활에 큰 과제가 될 것을 몸소 깨달었다. 그리고 꽃꽂이를 생업으로 30년간 꽃집을 운영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겉보기에 동양 꽃꽂이는 간단하고 소박하게 보인다. 서양 꽃병은 온갖 꽃들이 병에 수북이 풍요롭게 꽂혀 있다. 그 이유는 동양 꽃꽂이는 여백과 선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꽃 색깔에는 중점을 두지 않는다. 스타일이 중요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꽂는 방법은 복잡하고 각도를 따지는 매우 까다로운 예술이다. 하늘, 땅, 인간을 상징으로 하는 나무 가지와 꽃은 서로의 설자리와 그리고 길이에 맞게 조화롭게 배치되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고 믿는다.
가장 중심인 하늘을 상징하는 가지는 길고 굵다. 땅을 상징하는 가지는 짧다. 물론 그 사이에 사는 인간 역시 하늘가지 보다는 짧고 땅보다는 긴 길이의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여기엔 모두의 길이가 다른 상호 위계질서가 만들어 내는 수직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처음 꽃꽂이를 배울 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꽃 길이가 같으면 서로 싸운다, 라고 강조한다.
융통성 없는 규칙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꽂아낸 완성된 꽃꽂이는 매우 간단 명료하며 잘 정리된 모양을 가진다. 여기게 모순되는 점은 인위적으로 다듬은 그 모양이 매우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담장 밑에 피어난 꽃을 고스란히 방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자연과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조되는 서양 꽃꽂이는 꽃의 색깔과 균형을 중요시한다. 마치 꽃밭에서 여러가지 꽃을 한아름 베어 그대로 병에 꽂아 놓은 것 같은 풍성함을 보여준다. 꽃 꽂는 스타일 보다는 화사한 색깔의 배합과 균형이 중요하다. 풍성함은 느낌이지만 꺾어온 꽃의 배합이라는 느낌이 든다. 꽃 종류, 색깔, 크기 등을 배합하지만 그 길이는 비슷하다. 길고 짧은 꽃줄기의 배합으로 이루는 조화가 아니라 색깔의 조합이다.
어디서 그 차이를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문화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를 중시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늘, 땅, 인간은 서로의 주어진 영역을 지킬 때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생각은 유교사상으로 그 틀이 잡혀 있다. 하늘과 땅, 인간을 상징하는 가지의 길이는 서로의 자리를 지킬 때 질서와 조화를 이룬다는 수직의 관계를 지향해왔다.
동등한 위치는 아니지만 그 어느 하나가 없어지면 전체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관계의 파괴를 초래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서양문화권을 살펴보자. 쉽게 떠오르는 영어에 ‘you’라는 말에는 높낮이가 없다. 나이, 성별, 직업이나 동물까지 모두 ‘you’로 통한다.
즉 너와 내가 같은 동등한 선상에 있는 수평의 관계이다. 길이가 같으면 싸움을 초래하는 갈등이라는 개념과, 길이가 같으니까 평등한 관계에 있다는 관점의 차이는 동서양을 가르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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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