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우버 안의 작은 영화관

2023-06-02 (금) 전한나(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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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우버 안이 작은 영화관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이라크의 전쟁터가, 아이티의 대지진 현장이, 혹은 말기 암 선고를 내리는 의사 앞에 주인공이 앉아 있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풀타임으로 우버 기사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혼자 있거나 완벽한 타인과 침묵 속에 있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에, 별난 승객이 되어 말동무가 되어 드려볼까 싶은 마음으로 기사님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때로 그들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는 엄청난 것들이어서 역사의 현장을 살아낸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을 정도이다.

팔로알토에서 만난 한 기사님은 운동선수가 아닐까 싶을 만큼 굉장히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라크에 파견 다녀온 전역한 군인이라 하였다. 전역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아주 심각한 부상 때문이다. 그가 탄 군용차가 지뢰를 밟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몸의 일부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하였고, 이내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일의 시간이 흘러 있었고,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고 한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게 되었을 때. 그러나 그 삶이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땠을까. 그 이야기까지 듣기에는 나의 trip이 너무 짧았다.


뉴욕에서 만난 기사님 한 분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인해 미국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IT 업계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가족과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대지진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는 건물이 무너지면서 죽게 되었고, 자신 역시 크게 다쳐서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였다. 지금은 미국에서 새로이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우버 운전 일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가까운 미래에는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되어 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리운 얼굴의 미소를 통해 그가 얼마나 이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만난 우버 기사님들의 대다수는 이민자 출신이었다. 고국을 등질 수밖에 없던 저마다의 사연은 하나하나가 영화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에피소드들을 담은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강인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척박한 과거와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미래에 대한 소망의 꽃을 피우는, 그래서 오늘도 성실히 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들의 삶은 참 향기롭다.

<전한나(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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