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투고] 누리호 발사 성공이 주는 의미

2023-06-02 (금) 이상용(EB한미노인봉사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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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3초 전남 고흥 나로 우주센터에서 하얀 불꽃 꼬리를 그리며 우주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온 국민에게 흥분과 환호를 안기었다. 아름다운 광경은 신이 내려주신 축복이었다. 곧이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브리핑에서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완료했음을 국민들께 보고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첫마디 “정말 벅차다.” 이 한마디가 온 국민을 통합한 벅찬 감격의 외침이었다. 정말 벅찬 일을 해낸 연구진에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안기는 것이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이 되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를 목표 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온 국민이 기쁨과 희망을 갖게 되고 모두 하나 된 꿈을 갖게 되었다.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로 기를 못 펴던 국민이 이제야 가슴을 펴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우주 미사일과 장거리 유도탄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소유자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미사일을 가진 자의 마음 먹기 달렸다는 뜻은 언제든 핵무기를 탑재(搭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북한이 겁먹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이 1969~1970년 사이 소련으로부터 사거리 70km FROG-7 미사일을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반면 대한민국은 1971년 3월 주한 미군 7사단 병력 2만 명을 한반도에서 철수시켰다. 이것은 안보 위기로 이어졌다. 따라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체 방위력 증강 없이 미국 정부에만 매달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자주국방 계획 수립에 매진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 사거리지침에 묶여 미국의 반대 압력이 작용할 것이 분명하므로 박정희 대통령의 결연한 모습은 당시를 보여주는 TV 화면에서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12월 27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멤버로 로켓연구실 실장이던 구상희 박사를 청와대 오원철 경제수석을 통해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게 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내용은 “국과연은 국방부의 명령을 받는 즉시 모든 무기체계 개발과 지대지 유도탄 개발 계획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공군은 유도탄 개발 이후 작전 운영 계획을 수립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을 하달한 것이다. 이는 이미 공개된 내용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대로 한국은 미사일 핵심 기술을 프랑스에서 도입했다. 이를 백곰 미사일(NHK-1)이라 부르고 대한민국의 첫 국산 단거리 지대지 탄도 미사일이 탄생하였다. 이 사실은 미국을 제치고 제 삼국을 통해 도입한 것이 미국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이다. 미국은 생사를 같이 한 우방임은 틀림없지만 매사 미국을 통하면 더구나 방위 무기에 관해서는 세상에 모두 알려지게 마련이고, 추진하려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 자체로 계획을 세워 은밀하게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노력의 첫 결실은 백곰 미사일 개발에 있었고 성공을 이루었다.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일본 방문길에 1979년 6월 27일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방문 시 영빈관에 머물지 않고 박 대통령의 성의를 무시하고 주한미군 숙소에 머물 정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러한 실정을 이겨내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단계를 하나씩 이어 나갔다. 하지만 애석하게 뜻밖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으로 세상을 떠나자 개발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2021년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미사일 지침 제한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실로 얼마 만인가 미사일 사거리 지침에 묶였던 대한민국은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발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42년만에 종료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나로호 누리호 개발에 힘을 모았다.

우리나라 미사일 발전상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열화같은 출발로 1978년 백곰 미사일을 시작으로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공작원이 미리 설치한 폭탄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등 21명의 각료와 수행원이 사망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늦게 도착해 사건을 면했다. 이 사건으로 정부는 재 각성하고 현무 1 (사거리 180km 500kg)을 서둘러 개발했고, 1997년 공중 목표를 타격하는 천마 미사일을 완성했다. 2012년 사거리 300km 현무 2-A가 탄생했고, 2015년 현무-2A 300km 1.5t을 개발했고, 드디어 우리나라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현무-4 (800km 2t)가 등장하게 되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우주를 향한 누리호 3호가 발현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미사일 연구 인력은 한국은 800명, 일본은 3,000명, 미국은 2만 명에 이른다. 소수 인력으로 단기간에 이루어 낸 빛나는 발전에 고무되어 우리 국민 모두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미사일 발전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 분명해졌다. 누리호3 1단 엔진 75t 4개, 2단 엔진 75t 1개, 3단 엔진 7t 1개 도합 6개 엔진의 무게만 382톤이다. 소나타 차가 1.5t인데, 소나타 차 254대를 한꺼번에 들어 올려 하늘로 향하는 엄청난 힘을 상상하면 된다.

<이상용(EB한미노인봉사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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