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웃 섬기기

2023-06-02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크게 작게
5월은 미국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이었다. 아시아태평양계 이민자들의 미국 역사에의 기여와 업적, 희생을 기념하는 달로 1990년 공식지정 된 지 올해로 33년째다. 아태계는 아시아 대륙과 섬 및 하와이, 미국령 사모아, 미크로네시아 연방, 괌 등을 포함한 남태평양 출신을 말한다.

그동안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공헌과 기여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92년 4.29 폭동에 2020년부터 3년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가 폭증하기까지 했다.

지난 5월 메모리얼 데이 연휴동안 애틀랜타를 방문, 다운타운 동쪽의 오번 지역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년 1월15일~ 1968년 4월4일) 목사 국립역사지구를 방문했다. 두 블럭 안에 킹목사가 태어나 12세까지 자란 생가, 조부 때부터 3대가 봉사한 에벤에셀 침례교회, 잔잔한 수면 위 벽돌 받침대 위에 올려진 킹 목사와 부인 코레다 스콧 킹 무덤이 있고 거리에는 설교 테이프가 종일 킹 목사의 육성을 들려주었다,


킹목사 기념관 비지터센터 공원 ‘국제인권 명예의 거리’에서 반가운 인물을 만났다.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도산’은 한글로, 안창호는 영어 ‘AHN CHANG HO’(1878~1938)가 새겨진 발자국 동판(foot prints)을 보니 도산의 용기와 리더십이 인정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산은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인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발자국 동판은 2015년 8월13일 공식 절차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100여 명 중 1963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불러일으킨 로자 팍스 발자국도 보였다.

도산은 1902년 도미하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했다. 일제하의 조선, 중국, 시베리아를 오가며 세 차례 18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이혜련 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낳았다. 자녀 셋이 각각 공군, 육군, 해군에 입대했고 특히 장녀 수산은 해군 대위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다른 형제는 오랜 기간 중국식당을 경영하여 비즈니스에 성공했다.

1960년대 킹 목사를 비롯 흑인 커뮤니티가 이끈 민권운동이 1964년 민권법을 만들게 했고 1965년 린든 존슨 행정부는 인종차별을 없앤 선거권법을 제정하고 백인우선 이민법 규정을 철폐한 이민법을 개정했다. 그래서 한인들이 미국에 대거 올 수 있었고 오늘날의 200만 재미한인사회를 만들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도산 안창호 선생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도산은 한인가정을 방문, 청소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이 나중에는 미국인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아 ‘섬기는 봉사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킹 목사는 1964년 2월4일 설교에서 말했다. “내가 죽거든 조사를 짧게 하라.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것도 말하지 말라.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삶을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19세기말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던 흑백인종분리정책 짐 크로법(Jim crow laws)은 사장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흑인노예해방선언 100주년이 된 1963년 8월28일, 워싱턴의 평화대행진에서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이 나온 지도 60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왜 여전히 애틀랜타 흑인들은 가난하고 지쳐 보일까. ‘땡땡’거리며 킹 목사 역사지구를 15분 간격으로 오가는 전차 안은 운영이 될까 싶을 정도로 승객이 별로 없는데 모두 흑인이다, 이들은 아무도 차비를 내지 않았다. 전차비를 어디에 내냐고 흑인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며 하하 웃는다. 결국 운행 중인 운전수에게 일인 1달러씩의 전차요금을 주었다.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다니는 레드, 블루, 골드, 그린 4개 노선 지하철(Marta) 승객은 모두 흑인이고 공항을 오가는 라인에만 타인종이 보인다. 북쪽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승용차로 오가고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아이들이 피부색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던 킹 목사 같은, 또 봉사부터 시작하여 한인사회 형성을 도와준 도산 선생 같은, ‘섬기는 지도자’가 필요한 미국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