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랑 땅. 나뭇가지에 걸린 풍경종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자리대로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리고 내 시선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계신 부모님 두 분이 계신다.
몇 주 전 한국에 방문했던 기간에 마침 어버이날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이나 그동안 어버이날은 나에게 그저 매년 돌아오는 의례적인 날이었다. 전화를 드리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용돈을 부쳐드리는. 그래서 올해의 어버이날은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만큼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았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릴까, 근사한 장소에 가서 식사를 할까. 그러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부모님과 함께 의도적인 퀄리티 타임을 갖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 자서전’이라는 노트를 샀다. 펜과 노트를 챙겨 들고 부모님과 마당이 딸린 한적한 카페에 가서 앉았다.
노트에는 부모님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60가지 질문들이 들어 있었다. 피상적인 것부터 꽤 깊이 생각해 보아야 답할 수 있을 법한 질문들까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뭐에요? 가장 친한 친구분 성함은 뭐에요? 어렸을 때 별명은 뭐였나요? 두 분의 첫 데이트는 어땠어요? 지금 배우고 싶으신 건 뭐에요? 노년의 꿈은 무엇인가요?
꽤 쉽게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질문에도 부모님은 멈칫하고 골똘히 생각하셨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시고,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해주셨다. 오롯이 두 분이 이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 말씀해 주시는 각자의 스토리에 온 마음을 다해 경청해서 들었다. 듣고 있자니 괜스레 자꾸 눈에 물기가 서렸다.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꾸욱 참았다.
그냥 그날은 부모라는 역할을 떠나 한 ‘사람’으로서의 부모님을 마주하게 되어서, 그 모습이 생경했다. 마치 새롭게 알아가게 되는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부모님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부모님을 몰랐었나.
태어났을 때부터 내 인생에 늘 계시던 존재라 그랬을까, 부모님에 대해 사람으로서 알아가보려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다시 미국으로, 나의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전화할 때 일상의 안부만 묻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이렇게 부모님을 한 사람으로서 알아가기 위한 질문들도 해야겠다. 사랑하니까, 알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 지치지도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것처럼. 나도 들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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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나(UX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