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내가 ‘눈찢기’를 보고 웃었던 이유

2023-05-25 (목) 이하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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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히스패닉인 아들 친구와 공원에서 놀았다. 아들 친구의 엄마는 스페인어만 쓰는 엘살바도르 출신 사람이었다. 우리는 스페인어와 한국어, 영어를 넘나들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재밌었다. 그렇게 크게 웃으며 외국인과 대화한 것도 처음이었다. 항상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긴장했는데, ‘우리 서로 영어 못하잖아.’라는 공통점에 마음이 놓였다. 아들은 만나자마자 놀이터로 달려 나갔고, 우리는 언어 장벽을 넘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바빴다.

그녀는 6개월 된 내 딸아이가 예쁘다며 연신 ‘뷰티풀’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억양 때문에 그 단어도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딸을 쳐다보는 눈빛을 보니 그건 분명 예쁘다는 말이었다. 특히 딸의 눈이 정말 예쁘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자신의 눈꼬리를 손으로 잡아 올렸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눈꼬리를 손으로 찢는 것은 동양인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비하의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한 무례한 행동이다. 한국과 중국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던 그녀, 정말로 아시안을 잘 모르는구나 싶었다. 나는 대부분 아시안이 눈이 작고 길어서, 그런 제스처가 기분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안들은 오히려 당신처럼 동그랗고 큰 눈을 예쁘다 생각한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자기 주변 사람은 모두 눈이 동그랗다며, 당신 딸 눈이 더 예쁘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눈을 예쁘다 하며 웃었다.


최근 LA 출신 한인 여성 인플루언서에게 ‘눈찢기’ 제스처를 한 히스패닉 여성들이 도마에 올랐다. 그녀들은 아시안 영어 액센트와 생김새를 비하하는 표현을 하여, 전 세계 아시안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언제부터 서로의 다름을 이해가 아닌 미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을 ‘타자’로 규정짓고 혐오한다. 그녀는 눈찢기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지 못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해했을 것이다. 엘살바도르가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다는 것도 모르고, 그녀가 스페인어를 쓴다는 사실 만으로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한 나의 무지도 나중에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 그녀의 집 뒷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그녀는 엘살바도르 음식 ‘푸푸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 음식 ‘잡채’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그날 가져간 피자에 파리가 몰려드는 것도 모르고 재밌게 대화를 나눴던 우리. 다음에 또 어떤 다름을 이해하게 될지 기대된다.

<이하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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