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사후세계이다. 그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죽음을 인식하고, 사후세계를 상상하며 엄숙하게 의례를 받들었다. 그렇게 필멸인 인간의 숙명을 거부하며, 불멸인 신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처절하고 집요하게 원초적 욕망을 불태워왔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탄생시킨 수메르인들이 만든 쐐기문자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인류역사는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고유한 임무가 있다고 믿는다.
최초의 영웅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도시국가 우루크를 다스린, 반신반인 길가메시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전 14C 바빌로니아의 사제인 ‘신-레케- 우닌니’이 구전으로 전해오던 그에 관한 이야기를 12개의 점토판 문서에 기록했다.
길가메시를 찬양하면서, 제1 토판, 1-4 행의 반복 서문으로 시작한다. “나라의 기초인 심연(深淵)을 본 사람, ($)를 아는 그는 모든 곳에 지혜롭다. 나라의 기초인…” 저자는 ‘나라의 기초를 심연’이라고 말한다. 심연이란 단어는 <길가메시 서사시> 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다음의 5~8행은, “그는 사방을 샅샅이 조사한 후에, 모든 지식의 총체를 깨달았다. 그는 감추어진 것을 보았고, 비밀스런 것을 열었다, 그는 홍수 이전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다.
고대 인간창조 설화에는 항상 대홍수가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신들을 만나, 인간의 도리, 존재이유, 인간에게 부탁하는 당부를 직접 듣고 돌아왔다. 제 9-12 행에는 이 서사시 목적을 설명한다. “그는 먼 길을 떠나 지쳤지만, 새힘을 얻었다.
그는 자기 모든 수고를 돌기둥에 새겨놓았다. 그는 양우리와 같은 우루크 도시의 성벽을 세웠다. 숭고한 곡식 창고인 거룩한 ‘인안나’ 여신의 성벽을!” 수메르어로, 길가메시는, ‘노인이 청년이 되었다’ 라는 뜻이다. 서사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길가메시는 집권초 남성들은 호된 군사훈련으로, 여성들은 초야권을 행사하는 폭군으로 군림했다. 폭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평에 신들은 그를 대항할 수 있는 반인반수의 ‘엔키두’를 창조하여 지상으로 내려보낸다.
길가메시는 신만이 가질 수 있는 명성과 영광에 도전하기위해, 신전에 사용하는 백양나무 숲을 지키는, 무서운 괴물인 ‘훔바바’를 엔키두와 함께 공격하여 죽이며, 권력과 명성을 떨친다.
신들은 그들의 오만을 응징하기위해, 친구인 엔키두를 죽인다. 사랑하고 의지했던 엔키두의 죽음 앞에, 그는 진정한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길가메시는 우루크를 떠나 지하세계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는 인간, ‘우트나피쉬팀’ 을 만나러 죽음의 강을 건너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 입구에서 ‘시두리’ 라는 여신을 만난다. 그녀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설파한다. “밤낮으로 당신에게 즐거운 일을 하십시오. 춤을 추고 노십시오.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를 바라보고, 부인을 자주 포옹하십시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여신은, 주어진 각자의 몫이 자신의 운명이며, 소소한 일상과 가까운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고 말한다.
길가메시는 마침내 땅 끝에 살고있는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길가메시가 깜짝놀라, 그에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보니, 당신의 생김새는 나와 다르지 않아요. 당신은 바로 나입니다.” 그는 죽음의 땅에서 깨닫는다.
다른 모습일 것으로 생각했던, 영생하는 그와 자신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실로 충격이었다. 그는 우트나피쉬팀에게서 들은대로 심연으로 내려가, 불로초를 발견한다. 그리고, 우루크로 돌아가는 길에, 연못을 만나 불로초와 옷을 놓고 연못으로 들어간다. 다시 뭍으로 나왔을 때, 불로초는 사라지고 뱀의 허물만 발견한다.
불멸을 찾아나선 길가메시의 여정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난다. 하지만 또 다른 시작, 불멸의 시작이기도 한 여정, 그는 자신만의 심연여행을 통해 불멸의 비밀을 알아갔다.
리더는 과거와 일상으로부터 떠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쳐야할 고유한 임무인 ‘심연’을 경험해야 한다. 길가메시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 새 리더로 태어났고,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인간을 리더답게 만드는 원칙은 자신만의 불로초를 찾아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심연에 들어가려고 수련하는 사람이다.
우리는<길가메시 서사시> 를 통해,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기술, 영생을 추구하는 삶 자체” 라는 것임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
신응남/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