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은행의 도덕적 해이

2023-05-10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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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미국 금융시스템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SVB는 지난 2018년 금융권에서 직원들에게 임금을 가장 많이 주는 은행으로 유명했는데 1인당 평균 급여가 무려 25만달러에 달했다. 사내 구성원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는 은행 폐쇄 직전까지 이어졌다. SVB는 파산을 수일 앞두고 성과급 파티를 벌였는데 이때 일반 직원이 각각 약 1만2,000달러, 임원급이 평균 14만달러를 챙겼다고 한다.

문제는 이익은 구성원들이 독점하고 피해는 공공이 책임지는 방식의 시스템이다. SVB 파산 이후 벌어진 중소형 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단기간 투입한 자금 규모는 현재 수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산한 은행들이 새 주인을 찾으면서 이중 일부는 회수할 수 있겠지만 예금 전액을 보장해주는 등 특단의 대책을 사용한 까닭에 상당한 자금 손실은 불가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결국 무능한 금융 전문가들의 잘못을 국민의 혈세로 메우는 일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중소형 은행 파산 사태가 한인 은행 업계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남가주 6개 한인 은행들(뱅크오브호프, 한미은행, PCB, 오픈뱅크, CBB, US 메트로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악화됐지만 문제를 겪은 은행들처럼 예금이 급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순익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지만 경영 안전성 측면에서 자산과 대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다행이다. 행장들이 직접 나서서 은행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고객들의 우려를 불식시킨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한인 은행들이 진행 중인 감원에 대해서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선두 은행인 뱅크오브호프는 1분기에만 약 80명 직원을 줄였다. 기업이 위기를 겪으면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해 수백만 달러의 컴팬세이션을 수령한 행장과 수십만달러의 급여를 챙긴 임원진들이 은행에서 잘린 직원들만큼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급여는 더 많은 책임을 의미한다. 은행의 실적이 나빠졌다면 그 이유의 대부분은 하급 직원의 잘못이 아닌 경영진의 판단 실수 때문이다.

피해를 보는 것은 직원들 뿐만이 아니다. SVB 파산 이후 한인 은행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기록한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추락한 은행도 있다. 하지만 한인 은행들이 1분기 실적 발표 때 주주들을 위해 어떠한 의미 있는 주가 하락 방지책을 제시했는지는 의문스럽다. SVB와 일부 파산한 은행들처럼 일단 주식을 전부 손실보지는 않으니 주가가 회복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달라는 것인가. 이 역시 주주자본주의 측면에서 보면 한인 은행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SVB 파산 당시 드러난 고위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는 사실 단순했다. 그들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금리 인상에 취약한 채권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도 파생상품을 활용한 리스크 헷지를 하지 않았다. 이후에 자산 가치 하락이 현실화 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창구를 통해 유동성 자금을 구하려 백방으로 노력해야 했지만 이를 하지 않고 순진하게 손실 보전을 위한 유상 증자를 시도했다가 부실 은행 낙인이 찍혀 뱅크런에 빠졌다. 다른 은행들은 이를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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