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는 TV 시대가 왔다. 집에서 편하게 앉아 드라마를 볼 때도 이젠 ‘검색’을 해야 한다. 스마트 TV와 스트리밍 기기에 통합 검색이라는 도구가 나오긴 했다. TV를 켜고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검색창에 입력하면 온라인 화상 서비스(OTT) 플랫폼, 비디오 온 디맨드(VOD) 서비스, 실시간 채널 등이 주욱 나열되면서 시청 가능한 플랫폼과 VOD 가격 안내까지 나온다. 편의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빠르게 원하는 채널과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는 게 이유다. 그래도 TV를 보면서까지 보고 싶은 콘텐츠를 검색하기란 아무래도 영 익숙치 않다.
무엇이든 정리부터 하고 보는 습관으로 인해 검색 결과로 나열된 목록에서 원하는 것 하나만 찾아내는 게 번거롭게 느껴진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도입된 이후 매표한 영화의 상영관을 찾아 20개의 상영관들을 들여다 보던 시절보다 검색하는 TV 시대가 어찌 더 적응하기 힘들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소비자들 중 40% 정도가 원하는 콘텐츠를 찾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TV와 VOD 서비스 이동에 평균 6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나만이 느끼는 어려움은 아니라는 소리다. 가장 최근에 접속한 ‘프로필’ 계정을 중심으로 이어보기와 개인화된 추천 콘텐츠가 제공되는 넷플릭스 같은 OTT에 길들여진 탓도 있다. 이제 TV는 단순히 앉아서 영상을 시청하는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크린’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삼성 고위 관계자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3년 넘게 TV를 끼고 살다가 극장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언급했듯이 탐 크루즈 덕분이다.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타격을 입은 영화 산업은 지난해 영화 ‘탑건: 매버릭’이 위기의 극장가를 구해내면서 영화 제작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했다. 빅 스크린으로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놓으면 극장산업이 회생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탑건: 매버릭’이 특수 상영관까지 살려냈고 제임스 카메론의 3D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바톤을 이어받으면서 관객이 극장을 찾아야할 이유를 찾아 주었다.
지난달 2023 시네마콘에서 할리웃 영화사들이 발표한 2023년 개봉작 라인업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이 미뤄졌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올 여름 성수기부터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패스트 X)’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같은 액션 영화를 필두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리들리 스캇 감독의 ‘나폴레옹’ 같은 거장의 귀환도 줄을 잇고 있다.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곧 개봉하고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프랑스 관객들을 먼저 찾아 간다. 물, 불, 땅, 공기 등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의인화하여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한 ‘엘리멘탈’의 크리에이터는 한인 피터 손 감독이다. 뉴욕 브롱스에서 그로서리 가게를 하는 이민 1세대 부모 아래 성장한 그는 자신의 성장담을 토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티저 영상을 보니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까지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뿐 아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남자친구 켄을 연기하는 마고 로비의 ‘바비’,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에 휴 그랜트의 움파룸파까지 판타지로 가득한 ‘웡카’(찰리와 초콜릿 공장)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의 끝판왕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그리고 반드시 아이맥스로 관람할 것을 권유하는 ‘듄 2’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들로 매 주말 극장을 찾아도 모자랄 판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에서 비디오나 스트리밍으로 옮겨가는 윈도우가 45일에서 17일까지 짧아졌다. 극장 상영관이 아니라 OTT(온라인 동영상서비스)로 직행하는 영화들도 많았다. 로쿠 스틱이나 크롬캐스트, 파이어TV, 애플TV 등 인터넷 연결을 도와주는 스트리밍 기기가 커넥티브 TV의 시대를 이끌어내면서 건별 영화 결제도 가능해지다보니 이렇게 편리한 TV 시대에 굳이 극장에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역시 블록버스터 영화는 극장 상영 후 OTT로 가는 게 맞다. 관람객에게 OTT와 극장이 주는 경험은 전혀 다르다. 스트리밍으로 보는 영화는 모든 게 그냥 흘러가 버린다.
지난해 전미극장주협회는 코로나 사태 이후 위기의 극장 산업을 살리기 위해 ‘내셔널 무비 데이’를 창설했다. 미 전역의 3,000개 극장에서 하루종일 3달러에 영화를 보는 날이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만큼 비싸진 영화 티켓 가격으로 망설이는 관람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려는 방책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사람들은 안다. 답은 웰메이드 콘텐츠에 있다는 것, 관객이 영화를 반드시 상영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것, 크리에이터들이 고민해야할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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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