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설렘과 시작

2023-04-27 (목) 전한나(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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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설렘’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리며 음미해 본다.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것 같다. 볼이 상기되어 오는 것도 같다.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설렘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감정이 든다. 설렘은 신기한 감정이다. 그것은 전염성이 있어서 어떤 일에 설레여 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설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설렘과 짝지어서 자주 다니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시작'. 봄의 시작, 새 학기 첫날, 첫 데이트,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떠나는 길. 기다려 왔던 어떤 것을 만나기 직전의 약간의 흥분된 기분. 그것이 내가 생각해 본 설렘이라는 단어의 뜻이다. 설렘을 동반한 기다리는 일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것, 뻔히 예측할 수 있는 이벤트에는 보통 설렘을 느낀다고 하진 않는다. 설렘은 반드시 새롭고,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기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유는 있는 것에 의해 일으켜지는 감정인 것 같다. 기대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까닭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은 도리어 설렘보다는 불안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어떤 사람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도리어 사람에게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설레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선물 같이 느껴지니까. 마치 기다렸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내일 아침에는 열어볼 수 있다는 기대로 기분 좋게 잠드는 아이처럼.

한 번도 내가 쓴 글을 지인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대중에게 공유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성의 창에 칼럼을 게재하기로 한 것은 나에게 새로운 일이다. 첫 원고를 쓰며 느끼는 지금의 내 감정은 아마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쓸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첫 원고를 보내고, 그것이 실린 지면을 받아 보는 것을 상상해 본다. 글을 싣기로 한 횟수를 다 끝내고 난 후의 나를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지, 나의 글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울림과 공감을 줄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안이 아닌 설렘을 느낀다. 규칙적인 글쓰기를 통해 성장해 갈 나와, 지금 이 글을 통해 만난 당신이 나의 설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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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나씨는 대학원 과정을 위해 6년반 전 미국에 처음 오게 된 이래 2년마다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앤아버, 뉴욕, 필라델피아를 거쳐 현재는 사우스베이에 거주하며 구글에서 U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전한나(UX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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