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스토너의 삶
2023-04-10 (월)
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1922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난 존 윌리엄스는 덴버 대학교에서 30년간 문학과 문예 창작을 가르치며 소설을 집필했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1891년 미주리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농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도의 길로 들어서 교수가 된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지만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스토너에겐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요령이 없었으며 출세의 길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어떤 부당한 대우가 뒤따르더라도 교육자의 자질이 없는 학생에게 절대로 학위를 허락할 수 없다는 원칙을 꺾지 않았다. 동료들은 이따금 그를 ‘헌신적인 교육자’로 부르긴 했지만, 그 안에는 그가 세상의 일에 눈이 멀다는 경멸이 담겨있었다. 처음 사랑이라 느낀 사람과 결혼했으나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딸에게 깊은 애정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도 멀어져갔다. 마흔이 넘어 사랑이 찾아왔지만, 사랑을 지키지도 못했다. 명예퇴직을 권고받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종신 교수직을 마치겠다고 고집했던 스토너는 암 선고를 받은 뒤, 조용히 퇴직 절차를 밟으며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남은 논문을 봐주고 나서야 학교를 떠나왔다.
스토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 순간 그가 느낀 것은 한 줄기의 빛, 기쁨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품에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부분 시간을 고독하게 보냈고 친구도 별로 없었지만 스토너는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슬픔과 불행이 아닌 만족감을 느꼈다. 사실 스토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세상의 ‘성공’이라는 기준에 어느 것 하나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어찌 보면 실패한 듯 보이는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한결같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열정을 안고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마음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내년이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딸아이는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인기 있고 유망한 전공과 학교를 선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이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만나기를 바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울퉁불퉁하고 험난한 길을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사는 모습은 다 달라도 오늘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라도 스토너다. 문학에서 만난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따뜻한 위안을 준다.
<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