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만큼 우리 삶에 중요한 장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하루에 너댓 번은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 화장실이다. 그러니 시간으로 치면 하루 이삼십 분, 연간 5-7일 정도, 한평생으로 치면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중요한 화장실이지만 제대로 대접을 못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리 있을수록 좋다는 옛말이 있듯이 냄새나고 불결한 화장실은 어쩔 수 없이 가기는 가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집 뒤에 있다 하여 뒷간 또는 측간(厠間)으로 불렀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만든 ‘변소(便所)’라는 냄새나는 이름이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근사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화장실을 멘스룸(Men’s Room), 레이디스룸(Ladies’ Room), 레스트룸(Restroom), 배스룸(Bathroom) 등으로 부르며 남자 이름인 쟌(john)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인 못지않게 유머감각이 풍부한 우리 선인들도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화장실이 좌변기에서 수세식 양변기로 바뀐 것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강남권 개발과 아파트 단지 신축으로 수세식 양변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거의 모두 재래식 좌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 필자가 처음 미국에 출장 나왔을 때 애리조나주 어느 산골짜기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두루말이 화장지가 걸려있고 청결하고 냄새도 안나는 것에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한국은 냄새나는 재래식 좌변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신문지를 잘게 잘라 화장지로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한국의 화장실을 보고 그 눈부신 변화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은 오성급 호텔의 화장실 못지않게 청결하고 쾌적하며 서울시내 빌딩 화장실에는 거의 모두 비데가 설치되어있었다. 심지어는 공중화장실에까지 비데가 놓여있는 곳이 많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보급율이 매우 낮은 비데가 한국에서는 이미 필수품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비데를 사용해서 물로 세정하는 것과 마른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느낌이 천지 차이일 뿐 아니라 위생적인 면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데를 한번 사용해본 사람은 다른 것은 못해도 비데만은 꼭 장만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끔씩 모국을 방문할 때마다 비데를 써보고 그 상쾌하고 청결한 느낌을 못잊은 필자도 마침내 비데를 설치하였다. 고급 모델은 값도 비쌀 뿐 아니라 전문 플러머를 고용해야 하기때문에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다.
생각 끝에 온라인에서 보급형 모델을 아주 저렴한 금액에 구입하였다. 건조기능이나 자동 각도조절, 노즐 자동이동 등 여러가지 편리한 기능이 없이 필요한 곳에 물만 내뿜어주는 방식이라 전기연결도 필요 없고 혼자서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비데를 설치하고 나니 매일 아침 화장실 출입하는 것이 즐겁고 상쾌해졌다. 제품의 기능이 간단해서 노즐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물을 쏘아주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대신 움직여주어야 한다.
비데 덕분에 아침마다 전후좌우 회전운동까지 하면서 힘차게 엉덩이를 흔들어주니 늙어서 엉덩이 운동할 기회가 없던 나에게는 이 또한 일석이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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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