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정말 오랜만에(9년) 한국을 방문했다. 옛날에 내가 자란 동네를 가 보고 싶어졌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것이 변해있어 가는 곳마다 옛날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곳은 ‘종로구 가회동’이다. 유난히 전통가옥이 많은 이 동네는 “한옥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가는 곳마다 마치 민속촌처럼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었다.
5남매였던 우리는 방과 후면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지고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삼청공원의 말바위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버찌도 따 먹고 하면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동네 환경도, 사는 사람들도 모두 바뀌어 30년 만에 찾아간 내게 너무 낯설기만 했지만 그래도 골목골목, 옛날에 살던 집 근처를 가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동생이 물었다. “언니! 돈가스 먹으러 갈까?” ”혹시 거기 아직 있어?” “응. 가보자”
북악 스카이웨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북동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관광지로 주변의 화려하고 웅장한 음식점들과는 달리 옛 모습 그대로 허름한 그곳! 마음이 얼마나 푸근해지던지 수십 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인생의 새 출발이었던 고등학교 졸업식에 온 가족이 와서 축하해 주었고, 오늘은 무얼 먹으러 갈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원래 외식을 거의 하지 않던 터라, 졸업식 후엔 아주 특별한 곳으로 외식하러 가길 바랬다. 아버지가 돈가스,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하시기에 멋진 경양식 집으로 가는 줄 알고 설레던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이곳 ‘성북동 기사 식당'이었다.
얼마나 실망스럽던지…."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의 창피함, 실망감 같은 것은 아예 쌈싸 드시고 본인 좋으면 그만이신 이기적인 분이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울어버렸다. 아버지는 이곳이 하루 종일 운전으로 힘든 기사들이 일부러 찾아와 식사하는 곳이라 하셨지만, 나를 배려하지 않은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 없어졌음에 창피했다. 하지만 음식은 정말 맛있어서 이후 대학 다니면서 많이 찾았다. 그래도 기념일엔 절대 찾지 않던 곳이다. 늘 시키던 메뉴들을 주문했는데 그때 그 맛이었다.
나중에 아버지께 들은 말씀이 있다. 인생의 가장 멋진 날이고, 새 출발 하는 날이라서 그곳으로 갔다고. 세상의 멋지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을 쫓지 말라고. 맞닥뜨리게 될 모든 상황이며 만나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는 눈을 가지라는 뜻이셨단다. 그래도 멋지고 싶던 나의 철없는 마음을 못 헤아려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나 또한 감탄하며 맛있게 먹는 아들에게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면서, 아버지께 많이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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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