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장을 보러 가면 치솟는 물가로 인해 경악하게 되고, 지갑을 여는 손은 작아질 대로 작아져서 쇼핑을 하러 가서도 만져 보기만 하고 그대로 놓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민 온 지 올해로 벌써 23년째인 나는, 그리 모자라지도 않고 넘쳐나지도 않는 평범한 미국 생활이 참 좋았다. 얼마 전 주말에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정착했을 때 한국과 판이하게 다른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올려다봐도 봐도 끝이 없이 높은 나무들, 넓디넓은 차선들, 영어가 부족해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도움을 요청하면 뭐든 차근차근 도와주는 분들의 친절함이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김치가 너무 그리워 손수 만들어 보리라 배추 1박스를 사서(그 당시는 1달러였다) 아파트 욕조에 소금물을 풀고 재웠던 기억, 공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자며 LA갈비를 가득 준비해가서(당시 1달러/lb) 실컷 먹으며 즐겼던 기억, 오래된 캐딜락 중고 세단을 샀다며 멋지게 폼잡고 사진 찍어 한국에 보낸 유치했던 모습...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코비드 이후 힘들어진 경제 상황으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홈리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젊은 홈리스분들을 만나게 되면 게을러서가 아니라 힘들어진 경제 상황으로 길거리로 내몰린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며칠 전 피자가게 입구에서 멀쩡히 잘생긴 청년이 내게 와서 배가 고픈데 밥을 사달라고 했다. 순간 큰 체구에, 장난인 줄 알고 깜짝 놀라 아무 말을 못하고 들어와 주문할 메뉴를 보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제 막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 같았고, 아마도 내게 말을 걸기 위해 오래 고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밖으로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1시간이 넘게 찿아 다녔지만 결국은 만나지 못하고 돌덩어리 같은 마음으로 돌아왔다. 아들 같은 그 청년의 얼굴이 떠올라 그날 저녁은 정말 우울하게 잠들었던 것 같다.
요즘 같아선 누구나 이런 좌절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비가 많이 와서 일까? 오늘 아침 백야드에서 빨갛게 핀 예쁜 꽃들과, 오랫동안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던 나무에서 샛노란 레몬들이 잔뜩 열린 것을 보았다. 아무리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꽃도 피고 열매도 열리는 것을 보며,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내게 무엇이 있는가를 다시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어릴 적에 자주 들었던,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사지 멀쩡한데 뭔들 못하겠냐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보자.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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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