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들이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 속도가 빠른 무리가 마치 한 단위처럼 움직이며 이따금 경로까지 다 같이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의 행동 중에는 개인보다도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혹은 지능)인 행동 기제가 있을 수 있다.
사슴의 경우, 만일 감각이 특히 예민한 녀석들이 보초병 역할을 하고, 또 무리에서 제일 발 빠른 녀석들이 포식자를 유인해 무리에서 떨어뜨려주는 것이라면, 이것은 이집단적 행동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하여 사슴, 얼룩말, 개미, 꿀벌은 대표적 이집단성 무리에 속한다. (Jonathan Haidt의 ‘The Righteous Mind‘ 중에서)
9.11 테러공격은 개인주의적인 미국인을 돌연 이집단적(利集團的) 시민으로 만들었다. 테러가 일어난 9월 11일 오후, 수백 명의 타 지역 주민들이 재빠르게 맨하탄으로 몰려들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파헤치면 몇 사람의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그뿐인가, 그다음 주에는 군에 자원입대한 젊은이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집단적 행동은 곧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도시의 고층 건물마다 성조기는 휘날렸고, 시민은 긴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돈을 기부했다. 그때만큼은 정당 대립이 사라졌다. 누구나 대통령을 존경했고 앞장 선 지도자를 지지했다. 미국이 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일치단결의 국가가 되었다.
누군가의 이집단적 행동을 신호로 하여 시작된 초사회적 행동이 정교한 집단지성과 질서로 나타나는 현상은 초사회성이 발달한 동물이나 인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위기에 몰린 사슴이 갑자기 하나로 뭉쳐 비호같이 재빠르게 행동하는 현상도 이와 동일하다.
수 세기동안 초강대국에 내몰리던 남 유다가 결국 바빌론에 의해 패망했다. 이때가 BC 586년이다. 수많은 왕족과 젊은 인재가 사로잡혀 유프라데스 강변 소도시 니푸르(Nippur)에 유배되었다. 이때 이스라엘의 다윗의 깃발을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내걸고 싶다는 회복의 꿈을 가진 리더가 있었다. 선지자 에스겔이다. 그 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시기에는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그 꿈을 이어받았다.
두 리더의 아름다운 협업은 좌절한 유다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다 백성은 두 리더가 제시한 신명기 역사관을 새롭게 수용했고, 신본주의 신앙을 되찾았다. 그들은 강대국 중에서 사슴처럼 재빠르고 영특한 백성이 되었다. 나 자신보다 크고 고결한 그 무엇의 일부가 되려는 거룩한 열망을 가졌던 유배지의 유다 공동체를 우리는 ‘디아스포라 ’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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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