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팬데믹의 끝과 코로나의 기원

2023-03-07 (화)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2002년 나온 ‘28일 후’(28 Days Later)는 바이러스 재난 영화 중 수작으로 꼽힌다. 영국의 한 연구소에 동물 보호 단체가 침입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를 탈출시킨다. 이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퍼지며 감염된 인간들은 좀비가 되고 사회의 질서는 무너진다. 제작비 8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이 영화는 8,000만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으며 2000년대 이후 좀비 영화가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나 있을 것 같던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정부가 우한에서 새로운 형태의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이것은 박쥐를 파는 우한의 야시장에서 사람에게 전염됐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코로나가 박쥐에서 나온 바이러스고 우한의 야시장에서 온갖 동물들을 사고팔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2020년 2월 아칸소주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인 탐 카튼이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우한에 박쥐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최대 규모의 연구소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연구소 유출설을 주장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허위로 판명된 극소수 의견”이라며 매도했다. 2020년 3월에는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공개장을 통해 발표했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당시 트럼프는 코로나 방역 실패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기 위해 중국 정부가 미국인을 해치기 위해 일부러 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면서 중국과 중국인을 매도하던 때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쿵푸 플루”라고 부르는 바람에 미국내 중국계는 물론이고 아시안 전체를 타겟으로 하는 증오 범죄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이라지만 미국인을 해치기 위해 중국 사람부터 코로나에 감염시켰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트럼프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듯한 실험실 유출설을 아무 근거 없이 하는 카튼이 괘씸하게 보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상한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공개장에 사인한 과학자 중 하나가 피터 다스작인데 그는 바이러스 유출설이 제기된 우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해 온 에코 헬스 연합의 대표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출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 것은 자명하다.

연구소 유출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코비드-19에서 자연적으로 잘 발생하지 않는 유전자 ‘기능 증폭’(gain-of-function)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기능 증폭’이란 바이러스를 생화학 무기로 쓰기 위해, 혹은 그 치료 연구를 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해 감염 속도나 독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이 흔적이 나왔다면 이는 자연 발생이 아니라 인위적 조작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2021년 국무부는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사실을 밝히기 전인 2019년 가을 이미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직원들이 원인 모를 질병에 감염됐으며 이중 3명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 6월 그 때까지 자연 발생설을 강력히 주장하던 앤소니 파우치 ‘앨러지 및 전염병 연구소장’이 처음으로 연구소 유출 가능성을 인정했다.

2021년 10월 기밀이 해제된 미 정보 커뮤니티 평가 보고서는 자연 발생설과 연구소 유출설 모두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이 이 바이러스를 생화학 무기로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난 주 연방 에너지부와 연방 수사국(FBI)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에너지부는 전국 17개의 국립 연구소를 관장하는 기관이고 FBI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기관의 하나이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잠정적인 것이지만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백악관측은 코로나의 기원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 일치된 견해가 없다며 더 조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사태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는 분명하다. 카튼의 주장을 “가짜로 판명됐다”고 했던 워싱턴포스트는 “전문가들 사이 다툼이 있다”고 기사를 고쳤다.

코로나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려면 중국 정부가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우한 연구소에 대한 전면 감사를 벌여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된다. 만약 그랬다가 연구소 유출설이 사실로 확인되면 손해 배상 책임은 물론 공산당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이 뻔하기 때문이다.

개빈 뉴섬 가주지사는 지난 주 코로나 비상 사태를 해제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오는 5월 11일 그럴 계획이다. 지난 3년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는 끝나가고 있지만 그 정확한 기원은 오랫동안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