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지금 먹을까? 나중에 먹을까?
2023-03-03 (금)
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
사람마다 성격이 정말 천차만별이다. 막내 여동생에겐 아들만 셋인데 그중 둘째 셋째 아이들이 이란성 쌍둥이이다. 일란성이든, 이란성이든 한 엄마 뱃속에서 열달을 같이 지내고 나온 아이들이기에 성격차 없이 매우 비슷할 것 같은데, 두 아이는 외모부터 하나도 같은 게 없다. 쌍둥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이다. 맛있는 음식을 똑같이 나눠줘도, 한 아이는 나눠주자마자 한입에 먹어 치운다. 다른 아이는 지금 배가 고프지 않다며 이따가 배고플 때 먹겠다고 갖고 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5남매로 늘 북적이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넉넉한 형편의 가정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저 배곯지 않고 살면 잘 산다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늘 “몽땅연필 쓰기 운동” “빈 병 모으기 운동” “종이 양면 사용하기 운동” 등의 캠페인이 있었다.
두분 다 일을 하셔 늘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 우리 5남매들을 돌봐 주셨다.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인 조부모님은 배고픔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아신다며, 식사 때마다 여러가지 반찬을 준비해주시곤 했다.
그런데 음식을 먹을 때, 우리 5남매 성격이 각자 너무 달랐다. 유난히 음식을 먹는데 느렸던 나는 다 삼키고 나서 보면 다른 형제들이 이미 다 먹어 버리고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급한 마음에 음식 앞에 일단 손부터 올려놓고 보는 웃지 못할 버릇도 생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맛있는 음식부터 먼저 먹어 버리는 동생들과 달리 나는 늘 아무도 손대지 않는 맛없는 것부터 먹곤 했다. 이상스레 맛있는 것은 나중에 남겨 놓았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엔 음식이 다 없어져 못 먹게 되곤 했지만.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늘 빨리 맛있는 것부터 먼저 먹으라고 재촉하곤 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음식이 나오면 맛없는 것을 먼저 선택하곤 한다. 비록 다른 사람이 먹어 버린다 할지라도.
가끔 남편이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서 내게 물을 때가 있다. 굿뉴스(Good news)와 배드뉴스(Bad News)가 있는데 무엇을 먼저 듣겠냐고. 나는 주저치 않고 배드뉴스 먼저 듣겠다고 말한다. 배드뉴스를 들을 때 마음은 힘들지만 그래도 굿뉴스에 대한 기대로 배드뉴스가 주는 힘겨움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맛없는 것을 먼저 먹으면서 나중에 맛있는 걸 먹게 될 희망에 즐거워하는 것처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다가올 희망을 기대하면, 고생도 그리 힘들게 느끼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고생은 “바로 지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 고생의 결과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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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