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가슴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2023-02-25 (토) 진순세 / 굿스푼 이사장
크게 작게
끊임없이 물품을 모으고 버리지 못하는 행위를 ‘저장강박’, ‘저장장애’(Hoader Disorder)라고 부른다. ‘수집’이란 말과 ‘저장장애’란 단어엔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나름대로 질서있게 정리한 후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수집이고, 아무렇게나 쌓아놓고 꺼낼 수도, 찾을 수도, 활용할 수도 없는 상태라면 장애라고 말한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신질환 분류체계 DSM-5에서 저장장애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뜻 나눠주지 못하는 ‘강박적 저장’, 둘째는 너무 많은 물품을 구입할 뿐만 아니라 무료로 제공하는 물품 또한 과도하게 모아두는 ‘강박적 수집’이다. 실수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만일 잃었거나, 버렸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나. 불안감이 잠재돼있다고 행동상담심리학 교수들은 말한다.
미국민 중 2-6%가 심각한 저장장애를 갖고 있고, 저장강박이 특별히 강화되는 연령은 중장년인 55~94세의 중노년층이 젊은 층보다 세 배 이상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수집이든 저장이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장강박이 심해지면 주거지역, 혹은 타고 다니는 자동차 내부에까지 차마 버리지 못한 애물단지들과 불편한 동거를 위험하게 지속하게 된다.

일본인 곤도 마리에가 저술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란 책은 600만권이 팔렸다. 책에서 그녀는, 과도하게, 어지럽게, 불필요하게 쌓여있는 모든 물품들을 보관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켜켜이 쌓여있는 물품들을 다섯가지 범주(옷, 책, 서류, 생활용품, 추억의 소품들)로 분류한 뒤, 무엇을 버릴지, 얼마나 버릴지, 어떻게 공간을 정리할지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다. 보관할지 혹은 버릴지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기준으로 ‘가슴이 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라’고 말한다.

지난해 연말, 도시빈민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사랑의 중고품 수집 캠페인을 한국일보와 한달동안 벌인 바 있다. 원근 각처에서 많은 정성이 답지했고 큰 성과를 이뤘다. 거실 한쪽 구석에 쌓여있던 장난감, 자전거와 유모차가 기증되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점퍼와 이불, 방한용품, 방역물품들이 모아졌고, 매서운 추위가 엄습했던 성탄절 날 가난한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눠드릴 수 있었다. 슬그머니 늘어난 살림살이, 설렘과 두근거림이 없는 물품들이 모아지면 누군가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출함, 홀가분함, 해방감도 맛보면서 도시빈민을 위한 의미 있는 기증품으로 나눌 수 있다.

<진순세 / 굿스푼 이사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