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온 인류는 인재라고 해야 할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장마,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몸살과 ‘맘살’을 앓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무슨 수를 쓴다 해도 가망이 없는 절망과 체념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 ‘만사휴의(萬事休矣)’란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떠올리리라.
우리 조상이 힘이 없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6.25란 동족상잔까지 겪었고 아직도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미친’ 상태가 아닌가. 우리 한민족의 비극은 하루빨리 어서 끝내고 남북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기 위해 잘사는 남한이 못사는 북한을 끌어안는 통 큰 대북정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청소년 시절 나는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너무도 감명 깊게 읽고 분통이 터졌었다. 한국역사의 흐름이 크게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威化島 回軍)’ 이라 본 것이다.
고려 말기 1388년(우왕 14년)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이 철령(鐵嶺) 이북의 영토는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는 요구에 맞서 최영 장군은 팔도 도통사,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로 삼은 요동정벌군이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까지 이르렀을 때 이성계가 개경(開京)으로 회군한 사건 말이다.
몇 년 전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란 부제가 붙은 책이 나왔다. 2009년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적을 비교 분석한 책 ‘ 필적은 말한다 ’를 펴냈던 저자 구본진이 비석과 목간-방패-사리함 등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에서 우리 민족성의 본질을 찾아내는 ‘ 어린아이 한국인’ 을 출간한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발목에는 격식과 체면과 겉치레라는 쇠사슬이 잘가당거리지만 이는 오랜 중국화의 역사적 산물일 뿐, 원래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네오테닉(neotenic, 유아기의 특징이 성년까지 남아 있는 현상을 말함)한 민족이었다”며 우리 민족은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이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민족의 이런 ‘어린이스러움’은 고려시대 이후 중국의 영향으로 경직되었으나 19세기 이후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부드럽고 자유로운 한민족 고유의 품성과 글씨체가 다시 살아 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향후 연구 과제도 제시한다. 중국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 가 우리 민족과 관련된 문화일지 모른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 역시 글씨체다.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홍산문화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가 고대 한민족의 글씨체와 유사하다면, 이야말로 세계역사를 바꿔놓을 단서임이 틀림없다.
어떻든 이 ‘아이스러움’이란 우리 한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 모든 인종과 민족에게 공통된 특성이 아닐까. 이 순수하고 경이롭고 신비로운 ‘동심’을 갖고 모두 태어나지만 타락한 어른들의 잘못된 세뇌교육과 악습으로 ‘아동낙원’을 잃는 실락원(失樂園)의 비극이 시작되었어라.
아, 그래서 나의 선친 이원규(李源圭 1890-1942)도 일제 강점기 초기에 손수 지으신 동요, 동시, 아동극본을 엮어 <아동낙원 (兒童樂園)>이란 책을 500부 자비로 출판하셨는데 집에 남아 있던 단 한 권마저 6.25 동란 때 분실되고 말았다.
아, 또 그래서 나도 딸 셋의 이름을 해아海兒(첫 아이로 쌍둥이를 보고 한 아이는 태양 ‘해’ 그리고 한 아이는 바다 ‘해(海)’로 작명했으나 조산아들이라 한 아이는 난 지 하루 만에 세상 떠나고), 수아(秀兒)와 성아(星兒)라 이름 지었다. 평생토록 젊음과 동심을 갖고 살아주기를 빌고 바라는 뜻에서다.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바다의 낭만과 하늘의 슬기와 별들의 꿈을 먹고 살라고, 이와 같은 기원과 염원에서 아이 ‘아兒’ 자(字) 돌림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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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