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 제7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영화‘패스트 라이브즈’로 제73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셀린 송 감독(왼쪽 두번째)과 유태오(맨 왼쪽), 존 마가로, 그레타 리가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
“오프닝 시퀀스(첫 장면)를 가장 먼저 썼어요. 2019년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함께 살고 있는 미국인 남편과 한국에서 나를 찾아온 풋사랑과 사이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출발점이었죠”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캐나다 한인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는 누구나 가슴 속에 간직한 풋사랑을 반추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이고 어떤 이에게는 ‘인연’을 비껴간 사랑이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18편 가운데 관객들을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한 수작으로 극작가 출신 셀린 송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송 감독은 “인연이라는 것, 전생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은 훨씬 더 일상적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만남은 모두 인연에서 비롯된다. 전생에 그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다”라며 “영화를 함께 찍은 우리들 모두도 전생에 연결되어 있었다. 첫 번째 영화지만 우리가 함께 만든 영화이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서로를 깊이 알게 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전생에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전생’보다는 ‘인연’이 더 어울린다. 초등학교 시절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은 서로를 좋아했고 나영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나영은 캐나다로 떠나며 노라로 이름을 바꾸고 12년 후 뉴욕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중 해성과 SNS를 통해 연락이 닿는다.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로 국제적 만남을 지속하지만 그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까지 또 12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셀린 송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 나영처럼 실제로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극작가 시절 케임브리지의 아메리칸 레퍼토리 디어터 무대에 한국 해녀들의 삶과 이민자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영화 ‘넘버 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 아버지다.
영어와 한국어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는 송 감독의 대사들은 소위 말하는 동포 말투에 대한 트집을 잡기 어려울만큼 자연스럽다. 그레타 리는 LA에서 태어나고, 유태오는 독일에서 태어난 한인 2세 배우들이다. 그레타 리가 연기하는 노라의 한국어는 서툴지만 듣기 좋고 유태오는 외모부터 말투까지 외골수 기질이 다분한 그 시절 공대생의 분위기가 저절로 배어난다.
셀린 송 감독의 영화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스’는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자마자 현지 매체와 평론가들이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았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언어뿐 아니라 주인공들 사이에 흐르는 깊은 감정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데드라인(Deadline)은 ‘셀린 송 감독은 매혹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대의 사랑에 대한 개념을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또,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시사회 직후 평점 1위를 달리며 수상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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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