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미래를 살아내기

2023-02-20 (월) 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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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재와 먼지’라는 또 하나의 소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두 연인은 서로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깨닫고 동반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죽는 그 순간부터 시간이 하루씩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계속 거꾸로 흘러가고 드디어 첫 만남의 시간에 도착한 두 사람은 깜짝 놀란다. 우리가 이토록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만났던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로 갈수록 더 좋은 것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다시 사랑하며 미래를 살아내고 싶어진다.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은 현재를 바꾸어 놓는다.

대한민국 자살률은 ‘OECD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아동과 청소년 자살률도 계속해서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는 36.6명이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보며 ‘그때가 좋았다’라고 회상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지금 내가 열중하고 있는 오늘의 시간은 분명 미래로 이어진다. 우리의 미래가 오늘보다 더 좋다고 상상할 수 있다면 오늘의 삶은 얼마나 더 가볍고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매일 거꾸로 가는 시간을 경험하며 어제보다 더 행복을 맛보았던 연인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미래가 올 것이니 말이다.

우리 부부도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가정을 이루며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느낀다. 보고 또 봐도 가슴 뛰게 설레고, 하루도 안 보면 미치도록 보고 싶던 그 시절은 이제 상상도 잘 안되는 ‘아 옛날이여’다. 사랑은 아무리 길어도 3년을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그러나 풋풋함과 열정적인 사랑도 때론 그립지만, 평범한 일상을 함께 살아내며 얻어지는 성숙한 사랑도 충분히 아름답다. 결혼하면 사랑이 식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상대의 표정만 봐도 한 번에 알아낼 수 있는 익숙함도, 꾸밈없이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편안함도 나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세 아이와 엄마의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고단하던 시절, 나는 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어서 암담했다. 그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였다.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뭐 크게 달라질까 싶었지만, 내가 꿈꾸던 미래가 상상되지 않는다고 오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제가 오늘로 또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후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오늘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 그 사랑이 미래로 이어질 것임을 기억한다.

<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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