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내 이웃과 지란지교를 꿈꾸며

2023-02-16 (목) 김소연(새크라멘토 CBMC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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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생활에서 힘든 부분을 말하라면, 언어 그리고 문화 차이도 있지만 어쩌면 인간관계인 것 같다. 물론 사람 사는 어느 곳이나 있는 문제이지만 한국 사람들끼리 잘 아는 한인커뮤니티 내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 인간관계이다. 처음엔 유학생 부인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지만 남편이 공부를 마친 후 직장을 갖게 되면서 우리 부부의 이민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때부터를 미국주민의 삶이라고 불렀다. 신앙을 갖고 있는 나는 교회를 다니며 사람들과 사귐을 가졌고, 그 안에서도 공감대가 같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흔히 나이 들어서 만나면 친구가 되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10년, 15년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 몇몇과는 아주 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여행도 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나누면서 멀리 있는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가족과 같이 느껴졌다. 가족처럼 많은 부분을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이민생활은 외롭지 않은 것이다.

이민생활에 평안을 줄 1명의 편안한 친구를 생각하면서 나는 예전에 읽었던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떠올렸다. 감성이 폭발할 나이인 고등학생 때 읽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이 시의 구절처럼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고 흉보지 않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이 되지 않는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일어났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 시절 그렇게 꿈꿨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란지교는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뜻한다. 진심을 다하지 않고는 맑고 투명하게 서로를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한다. 이 시에서 진심은 허물없이 편안함을 보여 주거나,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럽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나 또한 내가 잘나 보이려 꾸밀 필요없이 솔직하고 정직한 모습을 그대로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것이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지란지교를 꿈꾸는 친구에게 난 어떠한 가면도 쓸 필요가 없다. 더 잘 하려고 스트레스 받으며 노력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진짜 내 모습을 보이고, 그 친구도 나와 같이 진심어린 마음과 행동으로 거리낌없이 사귐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사람과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는 관계가 되길 소망해 본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도 불편함 없는 휴식을 주고받는 편안한 나의 지란지교를 꿈꿔 본다.

<김소연(새크라멘토 CBMC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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