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2023-02-10 (금) 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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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14살 차이 나는 두 아들이 있다. 이미 결혼하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된 큰아들은 장남답게 힘들다는 말 한번없이 뭐든 혼자 척척 잘 해낸 반면, 서른여덟에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은 이상스레 믿음이 가기보다는 누가 때리지나 않는지 전전긍긍하여,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도 중간에 쉬는 시간이면 학교 운동장 창살에 기대어 아이를 지켜보기도 했다.

작년 여름 정말 오랜만에 한국 방문했을 때, 시아버님이 돌잔치 이후 처음 본 작은아들이 의젓하게 잘 컸다며 대견해하는 걸 보고서야 6피트가 훨씬 넘는 아이를 위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사춘기를 유난히도 혹독하고 힘들게 보냈던 것이 모두 엄마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7080세대인 우리는 공부 못하면 추운 겨울날 리어카로 산동네에 연탄배달하며 살아야 된다고 겁먹었다. 게다가 중산층 선생님 가정의 5남매 중 맏딸이었던 나는 첫째가 출발(Start)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1등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고, 치열한 경쟁의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내 아이한테만큼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다짐과 달리, 아이에게도 나와 같은 삶을 강요했었다. 어느 집 아이가 음악을 배운다면 아이에겐 묻지도 않고 등록하고, 어느 집 아이가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 애는 왜 저것도 못할까 하며 아이를 닥달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무조건 사랑해주라는 친정엄마의 계속적인 충고도 무시하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그것은 내겐 해당사항 없음으로 치부해 버렸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것을 아무리 성취해도 더욱 더 높은, 끝이 없는 세상적 목표를 줄 뿐인 엄마 때문에 아이는 모든 의욕을 잃어 버리고 최악의 사춘기로 힘들게 보냈다. 나는 그때서야 태어난 자식을 강가에 띄우고 오직 하나님께 맡긴 채 멀리서 쳐다봐야 했던 ‘모세’의 엄마 ‘요게벳’이 되었다.


원하는 학교에 가게 된 아이는 “엄마! 그때 엄마가 손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내가 성장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사춘기를 보낸 후부터 나는 아이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면 먼저 묻곤 한다.“그 선택을 하면 네가 행복하겠어?”라고.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지만, 오히려 두 치 떨어져서 남의 아이 보듯 조금 멀리서 보라고. 그러면 그 아이가 무슨 장점을 가졌는지 더 잘 보여 칭찬할 수 있고, 단점도 칭찬으로 바꿔 의욕을 북돋아줄 수 있다. 그래야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야 엄마의 영혼도 자유로울 수 있다.

<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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