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거나 저러거나 그저 남는 것은 부부밖에 없다. 그러니까 서로 아껴주면서 잘 살아.” 오랜만에 한국에 계시는 친정 어머니께서 전화 너머로 하신 말씀이다.
얼마 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새크라멘토에 사는 메디케어 클라이언트 분이 수술 전 나를 꼭 만나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오셔서 집 근처에서 잠깐 뵈었다. 부부, 두분이 같이 오셔서 나란히 앉아 계시는데 참 평안해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같이 곁을 지켜주고, 함께 이겨나갈 방법을 찾는 것은 항상 배우자인 것을 새삼 느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교제를 할 때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며 뻔질라게 만나고 사랑을 속삭이다, 부부가 되어 살아가면서 ‘님’이 아닌 ‘남’이 되어 가는 걸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지난주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8개월 된 손녀를 안고 들어오는 큰아들 내외와 같이 “하무이! 하뿌이!” 하며 뛰어 들어오는 2살배기 둘째 손주 녀석, “Dear God, thank you so much….” 한쪽 눈은 떠서 요리조리 살피면서 식사기도하는 첫째 손주 녀석, 게다가 이날은 칼리지 다니는 둘째 아들도 방학이라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남’이 될 뻔한 그 많은 순간마다 나의 화풀이를 들어 주었던 두 아들들, 특히나 둘째 아이에게는 본인이 뭘 하고 싶은 지는 안중에도 없이, 남들보다 뭐든 잘 해야 한다며 세상적인 잣대를 들이대었던 지난날이 못내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잠을 못잘 정도로 할 게 많아도,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이 아이한테 말이다.
몇 년 전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우리 가정은, 우리 교회는… 정말 아무 문제 없이 모두가 참 행복합니다”라고 하면, 바로 “아! 이곳엔 누군가가 피눈물을 늘 흘리고 있었겠구나” 하신다는 말씀이었다. 항상 양보하고 사과만 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리라. 양편이 똑같이 할 말 다하면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어떤 논쟁이 생겼을 때, 누군가 한쪽은 잘잘못을 떠나 먼저 사과의 손을 내밀어야 끝이 나고 평화가 오는 것이다. “나는 1도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이야말로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못보는 참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말인 것 같은데, 우리는 늘 이 말을 참 많이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 피눈물을 흘리는 누군가가 되어 보면 어떨까 싶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부메랑’이 생각난다. 던진 만큼 내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 다른 이를 힘들게 하면 그 몇 배가 내게 고통으로 돌아오고, 다른 이를 축복하면 이 또한 그 몇 배가 축복으로 내게 돌아온다는 부메랑의 원리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그리도 힘들게 여겨지는 우리의 지혜로운 사과와 희생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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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메디케어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