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일을 그만두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받았다. 14년간 일한 곳에서 이런 상처를, 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을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마음에 힘든 일이 생길 때 이건 꾹 참고 3일만 견디면 된다, 일주일이면 된다하고 주문처럼 되뇌며 견디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은 3일은커녕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심지어 세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믿었던 사람이 꿈에 나와 꿈자리를 어지럽힌다.
이렇게 오래도록 꿈자리까지 괴롭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어느 날은 그 앞에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져보자 싶다가도, 내 평생 누구와 그런 다툼을 벌여본 적이 없는 터라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마음을 내려놓고 괜찮다,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여 보곤 했다.
그러던 중에 집 근처 가까운 성당에 갔을 때, 신부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마음에 와 콕 박혔다. “부정적인 일들은 삭제하고 긍정적인 일들만 마음 안에 깊이 간직하라.”
사실 별 특별한 말은 아니건만, 내 특별한 사정 때문에 그 말씀이 더 마음에 와닿았나 보다. 내가 상처받은 그 쓰라림 때문에 너무 긴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으로 치자면, 어느 한 막이 끝나고 새로운 막이 올라갔는데, 주인공은 나오지 않고 무대 뒤에서 이미 끝난 내용을 가지고 동동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내가 그런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꼬락서니가 우스워서라도 그만하자 싶었다.
내 인생을 나눠 보자니, 부모 밑에서 자라고 공부하던 시기가 1막,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우며 힘든 결혼 생활을 하다 깨진 시기까지가 2막, 미국에 와 아이들 키우며 재혼해서 산 시기가 3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4막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3막을 붙들고 애면글면하고 있다는 것은 바보 같은 게 아니겠는가.
이제 4막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할 것인지, 어떤 사건들이 터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주인공이며, 주변 인물들과 잘 호흡을 맞춰 성공리에 막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이렇게 머리로는 생각을 정리했어도, 실제로는 부정적인 것들을 삭제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다.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원망과 분노가 아직도 내 안에 있음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일은 왜 그렇게 되었던 것일까.. 원인을 생각하고 결론을 내야 하는 버릇은 쉽게 버릴 수가 없어서 틈만 나면 생각에 빠진다. 사람 일에 원인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냥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된 거라고 마음을 돌리고 그저 이 시간을 견뎌내야 되는 것만이 답일 수도 있겠다. 이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만을 나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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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