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자율성의 욕구’

2023-01-28 (토) 김창만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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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한 것에 대한 자율성의 욕구가 있다. 자신의 선호도나 원칙, 행동을 직접 제어한다고 느끼려는 욕구이다. 따라서 자신이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조종되거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율성에 대한 의식이 위협받게 되면서 잠재의식에서라도 거부하거나 반항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의욕을 북돋우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부모가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본거야.’라고 말해주는 아이는 부모가 ‘이번 시험에 A를 받으면 5달러를 줄게.’라고 말하는 아이보다 장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더욱 높은 동기를 부여하고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요차이 벤틀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 중에서)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율적 이타심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동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설사 인간에게서 이타적 성향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적 행동으로 발생하는 ‘희생’을 감수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상호협력’, ‘상호호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바른 도덕심에 따른 ’자율성의 욕구‘가 발동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신도 벅찬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스웨덴 혈액협회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헌혈을 하는 여성에게 일정액의 물질적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더니 헌혈자가 급감했다. 헌혈협회는 방침을 바꿨다. 헌혈을 통해 받은 보상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도록 했다. 그러자 자발적 헌혈 여성의 숫자가 급증했다.

인간은 진화론자가 말하듯이 이기적 유전자로 똘똘 뭉쳐진 동물이 아니다. 또 인간은 이기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상술이나, 마케팅 전략으로 다스려지는 상품 지향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이웃의 행복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이타심과 선한 도덕적 자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병이어로 5,000명의 장정을 먹인 기적 사건의 중심에는 무명의 어린 소년이 있다. 작은 오병이어를 자발적으로 내놓은 작은 아이의 기증 행위가 이 기적 스토리의 핵심이다. 자율적 이타심이 개입되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쁨과 행복감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김창만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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