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하루] 소로가 월든 숲에 터잡다
2025-07-04 (금) 12:00:00
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피정(避靜·Retreat)이 필요할 때가 있다. 분주한 삶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힘을 얻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산이어도 좋고 물이어도 좋다. 높은 봉우리에 올라 전지적 관점에서 강과 들을 내려다봐도 좋고, 숲 속 호숫가에서 시야의 제약 속에 그 봉우리를 응시해도 좋다. 자연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요, 넘쳐 나는 욕망의 덧없음을 침묵 속에서 알려주는 스승이다.
1845년 7월 4일 초여름, 27세의 청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숲속에 터를 잡았다. 스승 같은 친구인 문인 에머슨의 배려였다. 콩코드 학파를 대표하는 이 둘에게 뉴잉글랜드는 고향이었다. 거듭된 실패와 낙망 속에 기진한 소로는 월든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미국인들은 연못으로 부르지만 우리가 보기엔 호수임이 틀림없는 크기의 빙하호 가까이에 소로는 손수 오두막을 지었다. 소나무를 베어 만든 작은 집 주변에서 재배한 콩이 주식이었고 야생의 과일과 채소가 부식이었다. 낚시와 채집, 수영과 노 젓기가 일상이었고 숲속 식물과 동물 관찰이 취미였다.
한때 뉴욕 문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소로는 이제 윤슬과 노을을 지켜보며 자연의 법칙을 익혔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과 물의 소리와 냄새도 구별하게 됐다. 전신선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그에게는 음악이었다. 이렇게 소로는 검약과 자족을 배우며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는 법을 익혔다. 그 결과의 기록이 ‘월든-숲속의 삶’이다. 자연과 벗이 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그 계절을 살아라.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시며, 과일을 맛보며, 대지의 영향에 순응하라.”
2년 간의 피정이 ‘월든’과 ‘시민의 불족종’을 낳았다. 이 두 책은 톨스토이에게, 간디에게,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차례로 영향을 주었다. 어느덧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됐다. 피정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어쩌면 혼탁한 세상을 바꾸는 지혜가 자라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