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SNS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간 분들에 관한 스토리가 빈번하게 나온다. 어떤 분들은 다시 되돌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역이민! 만감이 교차되는 단어이다. 나 또한 역이민의 의미에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종종 해보았었다.
이민 1세대는 대부분 자녀들의 교육과 장래를 위해서 한 알의 밀알로 이질의 토양에 뿌리내렸다. 귀속감을 상실한 채 바다에 뜬 일엽편주로 나침반을 챙기며 시간과 젊음을 소모하게 된 빈 가슴들이다. 젊은 시절의 계획이나 희망이나 자신감은 점점 희박해지고 현재 남겨진 것이, 이것이 자신의 모습 전부임을 수긍해야하는 입장이다. 먹물처럼 스며들었던 실망이나 아픔도 세월에 희석되며 지나갈 것이다. 어디에서도 자신을 다시 찾기에는 늦은 단 한 번의 인생임을 자각한다. 그런대도 다시 시도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원한다.
어느 곳에 흥미를 느끼든지 마음의 시선이 가든지 그 곳에 집중하기 위해서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가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 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 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라는 시의 일부다.
퓨리턴의 땅 뉴잉글랜드 태생의 그는 인생의 책임감과 의무의 수행을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삶을 살아내기위해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우리들 이민 1세대처럼.
삶의 과정에서 들리는 우주의 회오리소리, 소용돌이치며 회전하는 세상의 흐름은 연세가 많을수록 생의 불안을 조장한다. 현실적 자기와 욕망의 간격에서 오는 절망감으로 방황하는 이민 1세대들을 치유하는 처방 약은 결국 1.5세인 자녀들의 행복한 삶일 것이다.
오래전 읽었던 아르헨티나의 포스트 모더니즘 창시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생각난다. “바벨의 도서관”은 진열실이 무한히 늘어선 6각형의 방에 수많은 책이 진열되어있다.
6각형의 방 하나하나가 완벽하지 못한우리 인생의 발자취 같은 느낌을 준다.
역이민을 가는 것도 6각형의 우주와 같은 ”바벨의 도서관“에 방 하나를 갖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바벨의 도서관 안에서 매일을 느끼며 사랑하며 감탄하고 참고 견디는 긴 여정을 지나고 있다.
보르헤스는 “이 도서관은 무한하며 끝을 알수없다”고 했다. 우리는 끝을 찾는 대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하나를 갖는 것이 아닐까.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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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