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책상 달력을 들고 앉는다. 지인들 생일과 기념일 등을 기록하는 것이다. 4월, 엄마 생신을 기록하려다 갑자기 훅, 가슴을 훑으며 통증이 지나간다. 달력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작년 4월 생신을 얼마 앞두고 엄마가 돌아가셨다. 올해부터는 엄마 생신이 아니라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마음을 누른다.
그날 아침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몸피가 어린아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픈 엄마가 뒤에 누워 계시는데, 내 바로 앞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환한 엄마가 웃고 계셨다. 뒤에 아픈 엄마도 보다가 눈앞에 엄마도 보면서, “엄마, 어쩐 일이야? 꿈인가?” 하면서 엄마 뺨을 만졌다. 신기하게도 엄마 뺨은 생시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이어서, “엄마, 진짜네!”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신비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곤 이내 날개 같은 것이 나타나 엄마를 데려갔다. 꿈에서 깨고도 어찌나 생생한지 서늘한 기운에 잠겨 있었다.
그날 오후, 엄마가 돌아가셨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셨는데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셔도, 고관절이 부러져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셔도… 아버지보다 먼저 가면 안 된다고 버티시던 엄마는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해져서야 이 세상 힘든 짐을 다 내려놓으셨다.
엄마가 가시던 길은 목련에 벚꽃에 개나리까지 꽃이 지천으로 아름다웠다. 그 꽃 천지 위로 엄마가 바람처럼 자유롭게 다니실 것 같았다. 너무 예쁘다고, 참 좋다고 하시면서 떠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꽃들을 보면서 이제 다시 저 꽃들을 환호성 지르며 보지 못하리라… 봄꽃을 보면 이제 눈물이 나겠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그렇게 떠나시고 나서도 나는 엄마를 느낀다. 국수를 삶으면서도, 화장을 하면서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엄마만의 국수 삶기 비법을 말씀하시던 목소리, 또 화장을 하면서는 눈썹은 좀 짙게 그려라 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방 안에 있는 영정 사진을 보며, 오다가다 ‘아이고, 울엄마!’ 하고 부르기도 한다. 엄마라면 지금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서 더 지혜롭게 살고자 노력한다. 엄마를 생각하며 견디고, 엄마를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그러니 엄마라는 존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식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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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씨는 이스트베이에 둥우리를 틀고 살며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작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새로운 무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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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