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해라 2023! 춤추는 영일만에 희망의 배 띄워라

2023-01-20 (금) 포항=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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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포항 흥해읍

‘흥해라 흥해!’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을 응원하는 문구로 자주 등장한다. 경북 포항 북구에 흥해읍이 있다. 바다를 기반으로 일어서는 도시다. 영덕에서 포항 시내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형식의 바다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쪽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갯마을에 태고의 자연이 빚은 바위 작품부터,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문명의 흔적이 공존한다. 새해가 되면 늘 떠오르는 태양도 달리 보인다. 일출을 바라보며 한 해를 설계하고 새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 이왕이면 드넓은 대양으로 기운차게 뻗어나가는 흥해의 바다 전망대는 어떨까.

■갯마을 어선이 묵은봉에 올라간 까닭은?

흥해 바다 여행은 청하면 월포리에서 시작된다. 이곳부터 7번 국도를 버리고 해안도로(20번 지방도로)로 내려서야 한다. 월포해수욕장은 얕은 수심에 1㎞가 넘는 백사장을 보유한 해변이다. 초승달 조형물이 반기는 겨울 해변엔 인적이 거의 없어 하얀 모래밭과 파란 바다의 색감만 도드라진다.


월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울창한 솔숲에서 바다로 돌출된 ‘이가리닻전망대’가 나온다. 김씨와 도씨 두 가문이 합쳐 한 마을이 됐다는 이가리는 이 전망대 하나로 포항의 명소가 됐다. 모양을 따서 ‘닻전망대’라 부르는데, 물고기가 힘차게 꼬리치며 큰 바다로 나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실제 화살표 끝은 이곳에서 약 251㎞ 떨어진 독도를 향하고 있다. 높이 10m 전망 덱 아래로 맑고 투명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주변의 크고 작은 갯바위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진다.

전망대가 생기기 오래전 이곳은 ‘조경대’라 불렸다. 처음에는 물이 거울처럼 맑다는 뜻으로 조경대(照鏡臺)라 했는데, 조선시대 인조 때 청하에 귀양살이했던 유숙이 어민들이 고래잡이하는 모습을 보고 조경대(釣鯨臺)라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도 2년간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며 이곳을 자주 찾아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 볼거리를 만들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가리에서 다시 조금 더 내려가면 이름도 생소한 ‘사방기념공원’이 있다. 건설 용어인 사방은 산, 강가, 바닷가에서 흙이 씻겨 무너지거나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나 작업을 의미한다. 비탈에 층을 지어 떼를 입히거나 나무를 심고, 골짜기에는 돌을 쌓아 물의 흐름을 제어하기도 한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전국의 산하가 헐벗은 상태였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적 치산치수사업과 거의 동의어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이 사방기념공원은 1970년대 정부가 추진한 산림녹화사업의 성공 사례를 알리는 교육장으로 조성했다. 1977년까지 각종 나무 2,400만 그루를 심은 묵은봉 하단부를 공원으로 정비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장 지도하는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과 순시기념비, 영일사방준공비 등이 세워져 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1975년 4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이곳 국토녹화현장을 순시하시니 외로운 갯마을에 새 기운이 넘쳤도다.” 1977년 ‘조도마을 주민일동’ 명의로 세운 기념비 문구가 요즘의 북한 방송 어투와 비슷하다. 지나간 시대의 문장이 다소 거슬리지만, 끼니 해결이 당면 과제였던 시절에 산림녹화에 공을 들인 혜안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요즘 사방기념공원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공원 뒤편 묵은봉(126m) 꼭대기에 작은 어선 한 척이 올려져 있다. 2021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 소품으로 설치됐다. 봉우리에 서면 작은 갯마을인 청진항과 오도항이 코앞에 내려다보인다. 산꼭대기에서 보는 바다 풍광이 넓고 장쾌하다.

정상 바로 아래에 고려 말의 문신 박효수가 지은 흥해송라도중관해도(興海松羅途中觀海濤·흥해와 송라 가는 길에 바다의 파도를 보며) 시비가 세워져 있다. ‘세찬 바람 갑자기 일어 바다를 뒤집으니 하늘과 물이 서로 붙어 캄캄해지다’로 시작해 의천검을 한 번 휘두르니 비단결처럼 고와졌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당시에도 예사롭지 않은 바다 풍광과 다소의 허세가 표현돼 있다.


사방기념공원에서 묵은봉 정상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 계단으로 곧장 오르면 400m, 중턱으로 난 임도로 걸으면 750m다. 완만한 길로 천천히 오르며 바다 풍광을 즐기고, 계단으로 내려오면 수월하다.

묵은봉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청진항 바닷가에는 운동장만큼 넓고 평평한 바위가 펼쳐져 있다. 벌어진 바위틈으로 바닷물이 드나들어 주민들은 이곳에서 조개도 줍고 미역도 딴다.

■선사시대 비밀 간직한 칠포리, 뱃머리에서 일출을

오도리 해변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칠포항까지는 해안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바닷가 절벽을 따라가는 덱 길이다. 칠포마을 북측 주차장에서 약 200m 떨어진 언덕에 뱃머리를 형상화한 해오름전망대가 매달려 있다. 산책로에서 보면 실제 대양을 항해하는 듯한 모양이어서 일출을 보거나 인증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갑판에서 돌출된 뱃머리 끝은 구멍이 뚫린 철제 바닥이다. 발아래 코발트빛 물결이 넘실거리고, 전망대도 살짝 흔들려 뱃멀미가 느껴진다.

한편 해안에 흩어진 바위가 옻칠을 한 것처럼 검은빛이어서 칠포(漆浦)라는 설도 있다. 이가리 조경대와 마찬가지로 해오름전망대와 포구 주변에 흩어진 기암괴석 자체가 진귀한 볼거리다.

칠포리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까지 포구 주변과 곤륜산(177m)을 중심으로 무려 16곳에서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그림이 발견됐다. 통틀어 ‘칠포리암각화군’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모두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곤륜산 기슭의 암각화(흥해읍 칠포리 201)는 쉽게 볼 수 있다. 길이 3m, 높이 2m의 사암질 바위에 수수께끼 같은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단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포항=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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