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제사

2023-01-13 (금)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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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꽤 오래 머물다 보니 내가 친정에 지내는 날들 중 친할아버지의 제사가 들어있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본가를 떠난 지라 제사에 대해서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는데 예순을 훌쩍 넘긴 친정엄마가 몇일에 걸쳐 시장을 다니고, 굴 같은 생선식품은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어떤 것은 코스트코에서, 또 어떤 것은 이마트에서 장을 봐오고, 장을 봐온 것을 다듬고 손질하고 삶고 데치고 그렇게 몇 일을 준비를 하셨다. 이십여년 전에도 엄마는 결코 지금보다 덜 하지는 않으셨을텐데, 지금 이 시대에도 제사를 위해서 장을 보고 요리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너무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결국 엄마는 제사 당일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하시더니, 대상포진 같은 피부 두드러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고 오셨다. 이제는 나도 살림을 사는 주부가 되었고, 한 가정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스쳐지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제사란 말인가.

제사의 사전적 의미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한다. 인간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효를 계속하기 위함이며, 효란 자기존재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립인 나는 그 의식에 그 어떤 의미를 두거나 그 어떤 유래를 떠나서 제사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전적인 의미대로라면 효를 계속하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제사를 지냄으로 해서 효를 계속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미 돌아가신 분께 효를 다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 온갖 노력과 시간을 들여 먹지도 못할 음식을 준비하고 결국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그 제사를 준비하느라 지쳐 몸져 앓아눕는 모습이라니!

우리는 가족들과의 논의 끝에 올해로 꼬박 40주년이 되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온 가족이 다 모여 맛있는 저녁 한끼를 먹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어느 누구의 반대도 없었고, 이견도 없었다.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알찬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모두 함께 의견을 맞추었다. 내년부터는 가족 모두가 즐거운, 엄마도 즐거운 제삿날이 되었으면 한다.

<안세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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