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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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생각 - 내 것은 없다

2023-01-06 (금) 조민현/팰팍 성 미카엘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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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성당 청년회 후배가 나에게 생명보험을 팔러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얻은 직업이 보험회사였나보다. 혼자 사는 신부인 나에게까지 생명보험을 팔러 왔나 해서 하나 사 주었다.

나라도 도와주고 하나 팔아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매달 꼬박 꼬박 돈이 들어가니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 돈을 어떻게 하지? 누구에게 물려주지? 마땅히 줄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보험신청 때 누가 돈을 받게 되냐는 질문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그래도 가장 가까운 내 동생 이름을 적어 놓았다.
물론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를 않았지만 은근히 동생을 배려하는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이 별일도 아닌 일에 덤벼들고 나에게 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 동생이름을 확 빼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게 어떨 때는 마음에 들다가도 또 좀 있다 보면 마음에 안드니 나는 보험수혜자에 동생이름을 뺐다 넣었다 반복을 한다.

독일에 직업없기, 집없기, 와이프없기 3무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고 신문에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튀빙겐 대학 벤치에서 잠을 자고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대학식당에서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그가 기인인지 폐인인지 사람들의 평가가 왔다라 갔다리 한다. 그래도 신문에까지 나온 것은 보니 단순한 홈리스나 폐인은 아닌가보다. 이 사람이 실천하는 3무란 한마디로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을 완전히 포기한 걸까?
거지되기를 작정한 걸까?
아니면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모든 것이 상업화 대량 소비가 일상이 된 오늘 날 모든 가치를 박차고 살아가는 초월인의 모습일까, 뭐라고 해야 할까?
남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높이 올라가갈려고 평생을 아둥바둥 살아가는데 이렇게 안 가지려고 바둥 되는 사람도 있다니 이 세상이 재미있는 것이다.

글쎄 나도 사실 집이 없다. 성당이 집이니 이게 내 집인가? 언제든지 명령만 있으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와이프도 없다. 독신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있으면 큰 일 난다. 그리고 직업도 없다. 사제직이 소명이지 뭐 직업이냐?

그러나 세상 어딜 가나 내 직분을 수행하며 잘 얻어먹고 내 집처럼 편히 살고 잘 받아쓰기에 나도 3무를 실천하는 사람인지 아닌가 긴가 민가 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구유도 빌려 쓰고 돌아가실 때 남의 무덤도 빌려쓰셨으니 이 분도 3무를 철저히 실천하신 분이시다.

와이프도 없었고 있던 직업도 버리시고 자기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다. 하늘의 높고 화려한 영광의 주님이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 평생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다가 잡혀서 심하게 두들겨 맞으시고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셨으니 참 낮은 모습 그 자체이다.

그것이 케노시스 (KENOSIS) 가 아닐까? 자기를 비움이 아닐까? 진짜 3무를 실천한 기인은 바로 예수님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꼬라지를 생각해 본다.

<조민현/팰팍 성 미카엘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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