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연탄재

2023-01-06 (금) 박명희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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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며 미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날은 집이 최고라며 고기나 생선은 밖에서 맛있는 냄새를 온 동네에 풍기며 온 동네 강아지들 침 흘리게 연탄불에 구워야하고, 이런 날엔 연탄재를 빙판길에 던지던 좋겠다며 한참을 연탄 이야기로 추억에 잠겼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아직도 커다란 드럼통 안에 연탄을 넣어 만드는 음식이 역시 맛있고 인기가 많다면서, 이것저것 먹는 얘기를 하며 군침을 삼킨다.

연탄이란걸 모르는 미국에서는 염화칼슘 색색깔 소금과 모래를 뿌리고, 한국도 지금은 가스와 전기를 주로 사용하니 요즘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검고 무거웠던 연탄이 다 타고나서 희고 분홍빛의 가벼운 연탄재가 대문 옆에 쌓여있다가 눈이 펑펑 내리고 물이 얼은 빙판이 되면 연탄재를 던지고 온 발로 잘게 부숴버리고, 어쩌다 덜 타서 뜨거운 연탄재라도 아줌마가 던져주면 털신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나도록 서로 먼저 달려들곤 했었다. 추운 겨울에 괜시리 집에 오는 길에 쓰레기통 옆에 쌓인 연탄재를 대문에 발로 차고 나 아닌 척 얌전하고 새침하게 도망가던 심통보도 떠오른다.


불길이 잘 닿은 아랫목은 이불까지 노랗고 까맣게 타고, 가끔씩은 문틈으로 새어든 연탄가스를 맡고 마당으로 끌려가 누워 동치미 국물 마시고 누워서 바라보면 빙빙 돌아가는 어지러운 노란 하늘, 그때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서 똘똘하던 내가 서울대를 못 갔다며, 휴유증으로 지금도 가끔씩 멍청하게 지낸다며 낄낄 웃는다.

비록 지금은 까만 연탄이 차갑게 식어 허옇게 된 연탄재이지만 그래도 누구나 한때는 불이 활활 타오르던 뜨거운 불덩이였다가 식어서 구석에 쌓여간다. 나는 그 누구에게라도 한번은 유익하고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반성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해가 바뀔 때면 우리는 가끔씩 문득 철이 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괜찮은 어른이 되어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박명희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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