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생일 축하합니다

2023-01-05 (목) 데보라 임(산호세동산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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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하고 싶은 날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생일날이 아닐까 싶다. 왠지 그날에는 혼자이기 싫고, 음식도 여느 때와는 다른 특식 메뉴였음 좋겠고, 그날만큼은 기분이 아주 좋고 싶다. 나 혼자라도 자축하고 싶은 내 생일은 음력이라 새 해의 달력을 여는 날부터 양력 날짜를 찾아 제일 먼저 동그라미를 친다.

생일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시어머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친정 집안은 원래 아버지 생신 외에 자식을 위한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생일에 오빠가 방에 스피커를 달아 음악을 틀어 춤을 추게 해주고 아빠가 방문을 조금 열고 슬쩍 포도주를 넣어 주시는 친구 생일이 나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 윗대의 선조들 생신과 돌아가신 날들로 채워진 우리집 달력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 많은 상들을 차려 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고, 자식들 생일까지 챙길 여력이 없으셨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결혼 후 시댁은 우리집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어머님께서는 연초에 칸이 넓은 새 달력을 구입하셔서 식구들, 교인들, 지인들의 생일부터 먼저 빼곡히 적어 넣으셨고, 다 외우기 어려운 숫자 때문에 매일 아침이면 달력을 보시며 저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화를 걸어 주시고는 하셨다. 물론 맏며느리의 생일에는 해마다 어김없이 온 가족들이 잊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시며 선물까지도 챙기셔서 두둑한 봉투를 쥐어 주시는 어머님이셨고, 심지어 내가 미국에 처음 들어온 날짜도 기억하시어 늘 전화를 해 주셨던 시어머님이셨다. 박사학위 몇 개는 거뜬히 따셨을 그 똑똑하시던 우리 시어머님께서 지금은 치매의 병상에 계시기에 나는 시어머님의 생일 축하가 많이 그리워지곤 한다.


솔직히 내가 태어난 날이 왜 그렇게 축하 받고 싶은 날인지 뚜렷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생일은 무조건 특별한 날이고 왠지 축하를 받아야할 것만 같아서 인 것 같다. 그렇지만, 축하 이전에 한 개씩 늘어가는 촛불을 후우 불면서 거기에 따라 늘어나는 내 인생의 책임과 무게도 느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생일은 촛불의 숫자만큼 인생의 잣대가 하나 더 늘어나는 시작의 날이며, 한 해의 성적표를 받는 날이기도 하다. 이루어 놓은 성취감으로 등이 따뜻한 기분 좋은 점수를 받기도 하지만, 세세한 게으름이 커다랗게 모여져 있기에 낙제점수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다 한들 우리네 인생이 아쉬워도 돌아섬을 허락치 않는 안타까운 시간만이 허락되었음을 어찌하랴.

케익에 또 하나의 촛불을 꽂으면서 이 세상에 가장 멋진 엄마를 통해 나를 보내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늘까지 나를 건강으로 지켜 주심이 감사하며, 나만을 위함이 아닌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생일 축하를 나자신에게 보내며, 다음해에는 촛불의 개수만큼 감사의 개수도 드릴 수 있는 생일을 맞으련다.

<데보라 임(산호세동산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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